<요식업 성공스토리> 능수엄마

38회 88올림픽 특정업소

  

서울시 각 구마다 소문난 특정 메뉴를 정해서 올림픽 때 활용한다는 내용이다. 종로구는 무엇, 서대문구는 무엇, 영등포구는 무엇, 용산구는 무엇, 그런 식인데 동대문구는 홍릉갈비, 마포구는 마포갈비, 그리고 금천구는 춘천옥이 선정되었다.

 

 

평강댁을 시켜 배추를 짜게 저리거나 아주 싱겁게 저려서 제 맛을 내지 못하게 할 작정이었는데, 막상 그렇게 시키려니 무척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평생 문씨에게 약점을 안고 사는 꼴이어서 겁도 나거니와 만약 평강댁이 남편 말을 듣지 않는다면 더욱 큰일이었다.
“왜 돌아오신 거에요?”
“문형, 아까 내가 한 말은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소. 아무래도 별 효과가 없을 것 같아요. 주인이 금방 맛을 알아볼 텐데, 공연히 부인만 신용을 잃게 되고 결국은 문형한테도 이득 볼 게 없을 것 같소. 다른 방도를 연구해 봐요.”
“그러고 보니 그렀네요. 김치 맛이 이상하면 제 식구만 난처해지겠죠. 박 사장님 말씀대로 우리들 생각이 짧았나 봐요.”
“맞아요. 하루 이틀 김치가 짜다고 춘천옥 망할 리도 없구.”
그날 밤 문씨는 평강댁을 끌어안고 마음을 떠본다. 춘천옥 김치만 짜게 해주면 큰돈을 주겠다는 사람이 있다고 말을 흘려본다. 그러자 평강댁은 남편의 몸을 떠밀면서 버럭 소리를 지른다.
“우리 일가족 죽어버리자구.”
“뭐야? 이 여편네가?”
“춘천옥에서 쫓겨나면 이나마도 못 살 틴디 워떻게 허냐 말여. 춘천옥 만큼 대접해주는 디가 읎을 틴디. 나도 다른 데서는 일하고 싶잖응게.”
“그냥 해본 소리야.”
“박 사장인가 그 인간하고 놀아나는 모양인디…”
“이 여자가 지금 뭔 소리야.”
“사모님도 눈치 채고 있응게 조심혀. 굶어죽고 싶으면 박 사장하고 놀아나든가 멋대로 하라구. 그러구 앞으로 허튼짓 했다간 그대로 일러버릴 팅게 알아서 혀. 그분들도 참는 데 한계가 있어. 자칫하면 쇠고랑 찰 줄 알라구.”
“다 처자식과 먹고살자는 일야.”
“뭐여? 먹고살자는 일이 기껏 그런 못된 짓? 나 춘천옥에서 쫓겨나믄 혼자 몰래 내뺄팅게 알아서 혀. 증말 당신 같은 인간하군 살기 싫응게 조심하라구. 인자 당신한티 매 맞고 살기 싫어. 한번만 내 몸에 손대면 새끼고 지랄이고 모다 팽개치고 내뺄 팅게 그리 알어. 예전에는 새끼 땜에 도로 겨들어왔지만 인자는 애들이 컸응게 옛날과 달러.” 
“알았어.”
문씨는 아내를 도로 껴안았지만 평강댁은 몸을 벌떡 일으킨다.
“환장하겠구먼. 이 인간이 언제나 철들 건지....”
“여보, 미안해. 그동안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는 당신한테 절대 나쁜 짓 안 할 거야. 하기야 내가 평생 바람피운 적 있어? 술 좋아한 것뿐이잖아.”
“바람 필라도 돈이 있어야 피지. 빈털터리한티 어느 년이 달려들 거여.”
“내 맘속에는 당신뿐이란 뜻이지.”
문씨는 평강댁을 냅다 끌어안는다. 품안에서 평강댁이 발버둥을 쳤지만 남자 힘을 당해낼 수 없다.
“이건 강간여.”
“부부간에 강간이 어딨어.”
평강댁의 몸은 벌거숭이가 된다.
“후유, 이 웬수…”
어느새 평강댁의 팔이 사내의 등을 껴안고 있다. 몸을 풀고 난 문씨는 혼자 미소를 짓는다. 박 사장과 황 사장한테서 건네받을 돈 봉투가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오늘자 몇몇 신문에 올림픽 특정업소가 실렸더군. 금천구는 춘천옥 보쌈과 막국수가 선정됐어.”
이 교수한테서 걸려온 전화다. 친구는 보도의 요점을 설명해준다. 서울시 각 구마다 소문난 특정 메뉴를 정해서 올림픽 때 활용한다는 내용이다. 종로구는 무엇, 서대문구는 무엇, 영등포구는 무엇, 용산구는 무엇, 그런 식인데 동대문구는 홍릉갈비, 마포구는 마포갈비, 그리고 금천구는 춘천옥이 선정되었다. 내년에 열리는 올림픽 준비의 하나로 외국 관광객들이 들릴 업소를 정부 차원에서 선정한 모양이다.
춘천옥은 위생시설에 정성을 쏟는 중이다. 특히 화장실에 신경을 쓰는데 88올림픽을 앞두고 화장실 문화가 새롭게 번지고 있었다. 춘천옥에서는 화장실을 내실의 중심 공간으로 여겨 꽃병까지 놓아두고 서울시장의 표창까지 받았다. 화장실에 대한 표창장이 처음에는 어색하게 여겨졌지만 나중에는 너무 값진 표창임을 깨달았다.
서울 시내 공중변소도 새롭게 단장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관청이 앞장서서 지도하지만 가는 곳마다 냄새가 진동하고 지저분했던 공중변소가 개축되고 미화되었다. 업소의 화장실도 내실 개념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점점 화장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국민정서로까지 번져갔다. 화장실 선진화는 개인과 국가의 정신적, 물질적 선진화를 상징하며 한국인의 문화수준을 향상시키는 데에 크게 공헌할 것이었다. 

 

 

점심시간 무렵이다. 축구 국가대표선수인 H선수(전 국가대표 감독)가 갓 결혼한 아내와 현관에 들어선다. 남편이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라면 아내는 한창 연예계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미모의 여성이다. 나는 단골손님인 그들 부부를 외딴 방으로 안내하고 함께 동석하곤 한다. 그들 부부는 인기인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알뜰한 여느 부부처럼 소탈하다. 특히 H선수의 미소에는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는 축구선수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수줍음이 배 있다.
C선수와 함께 1980년대 한국 축구의 대표 스타로 부각된 선수다. C선수가 ‘갈색폭격기’로 통했다면 H선수는 ‘진돗개’로 통했으며, C선수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한창 인기를 모을 때 H선수는 히딩크가 한 때 감독으로 있었던 네델란드의 아인트호벤 구단에서 뛰었다. 그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출전을 위해 C보다 앞서 귀국하게 된다.
아시아 예선에서 일본을 물리치고 오랜만에 자력 진출한 한국은 아르헨티나, 불가리아, 이탈리아 등 유럽 및 남미의 강호들과 겨루게 된다. 한국팀은 차범근, 허정무, 최순호, 김주성 등 최강의 멤버로 짜여 졌지만 세계축구의 강호들과 겨루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르헨티나와의 첫 번 째 경기에서 한국은 3대1로 졌지만 월드컵 본선에서 최초로 얻은 득점 골이라는데 의미가 컸다. 더구나 이탈리아전에서 3대2의 성적을 낸 것은 큰 성과로 평가될 수 있는데 거기에 H선수가 한 골을 추가시켰던 것이다.
“아르헨티나 전에서 후반에 마라도나를 마크했는데 정말 힘들었죠?”
내 조심스런 물음에 그는 곤혹스런 표정을 짓는다. 세계 매스컴이 태권도축구라고 비아냥댔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라도나의 독무대를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탈리아전에서 후반 사십삼 분에 기적 같은 골을 날렸는데, 기분이 어땠어요?”
내 달뜬 칭찬에도 그의 말은 여전히 담담하다. 승리하지 못한 데에 대한 부담감인 듯싶다.

▲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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