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 (한강물환경연구소 연구원)

남성현 한강물연구소 연구원

팔당호와 그 주변 4km 까지는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원칙적으로는 선박을 이용 할 수 없는 지역이다. 하지만 나는 매주 팔당호에서 배를 탄다. 팔당호와 남한강, 북한강의 물이 충분히 깨끗한지, 그 안에 어떤 생물들이 있는지 조사하기 위함이다. 주기적으로, 규칙적으로 하는 일이라서 지루하겠다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매 번 새로운 즐거움이 생긴다. 그런 즐거움들 중 몇 가지를 나눠보고자 한다.

1. 계절의 변화

매 주 나가는 것이지만 그 와중에 남한강처럼 북한강처럼 계절이 흘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강가의 나무들이 옷을 갈아입는 것에 맞춰 꽃들도 얼굴을 내밀기도 하고 다시 들어가기도 한다. 강물은 또 어떤가. 변해가는 강가와 그 앞의 나무들을 담으면서 동시에 변해가는 하늘도 담는다. 배가 가르는 팔당호의 물이 매주 변해가는 것을 보는 것은 신기한 경험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언제나 즐겁고 좋기만 한건 아니다. 여름철에는 그 계절적 요인-수온상승, 용존산소량 감소, 일조량 증가 등-으로 인해 플랑크톤들이 대량 증식을 하는 것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으니까. 숨바꼭질을 하는 것 같다. 비가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곤 하지만 비가 오지 않으면 다시 초록빛이 든다.

그저 잔잔해 보이기만 하는 팔당호의 이런 역동적인 모습을 합법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 감사한 일이다.

2. 드라마 촬영

주로 봄이나 가을에 볼 수 있다. 두물머리는 이미 손꼽히는 명소라 그런지 평소에도 저 시기엔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그러는 중에도 신기하게 드라마 촬영이 있으면 그 분위기가 달라진다. 사람이 더 북적북적해지거나 오히려 아무도 없거나.

가까이까지 접근 할 순 없어서 먼발치에서만 볼 수 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각도에서 그 장면을 볼 수 있다는 것. 이것도 감사한 일이다.

3. 용왕님께 바치는 제물

용왕님께 제물을 바치기 위해선 최소 두 가지 조건 중 한 개는 충족 되어야 한다. 하나는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실험 장비를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 사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다. ‘팔당호’를 조사해야 하니 배를 타야 할 것이고 팔당호를 ‘조사’해야 하니 장비를 가지고 갈 것이다.

흔하게 바쳐지는 제물은 바로 핸드폰이다. 조사를 위해 나갔을 때 핸드폰은 매우 중요하다. 현장의 모습을 담기 위해 사진을 촬영하기도 하고, 현장에서 측정한 데이터의 기록을 위해 디스플레이를 촬영하기도 한다.

하지만 손은 젖어서 미끄러운데 제대로 터치도 안 되고, 배는 흔들리고, 원하는 구도는 잘 안 나오고... 그러다보면 기묘한 자세로 촬영을 하게 된다. 그러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배가 흔들리기라도 하면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은 바로 용왕님께 제물로 바쳐지게 된다. 물론 물을 뜨고 있을 때도 안심하면 안 된다. 그 땐 실험 장비를 제물로 바치게 될 수도 있으니까.

내가 바친 제물로 인해 팔당호가 범람하지 않는다는 건, 감사한 일 일거다, 아마도

4. 팔당호의 작은 섬들과 새들

팔당호에는 이런 저런 작은 섬들이 있다. 사람이 없는 그 섬들은 새들이 번갈아가면서 쉬었다 가곤 한다. 언제는 하얀 새들이-이름을 알면 더 좋겠지만 그러지 못해 아쉽다- 언제는 까만 새들이 그 섬을 채우고 있다. 이 배 위가 아니었다면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작은 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곳이 되는 작은 섬들. 그런 팔당호의 작은 섬들을 보면서 내게 있는 중요한 사람들을 떠올리곤 한다.

중요한 누군가가 있고, 누군가에게 중요한 존재라는 건 역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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