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과제3.

최근희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양평군 산하 공사의 채용비리 의혹과 경영상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는 양평시민의소리 보도로 정당과 시민단체의 조사촉구 요구가 연일 높아지고 있다. 이는 양평만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최근 언론에 정부출연·투자 공공기관의 각종 비리 뉴스가 쏟아졌다. 무려 489개 공공기관에서 1488건의 비리가 확인됐다고 한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설마 모든 공공기관이 저럴까’라는 씁쓸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비리 원인과 근절 대책은 무엇일까?

근본적인 원인은 공공기관이 너무 많아서 시민이나 정부 사정기관의 감시의 눈이 미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진보든 보수든 선거공신을 낙하산으로 내려 보낼 공공기관을 계속 신설해 왔다. ‘대한민국은 공사(公社)공화국’이라 표현하는 이도 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처럼 공사를 많이 보유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여러 해 전의 일이다. 서울시의 재정자립도가 낮은 한 구청에 시설관리공단이 설립되었다. 필자가 그 공단의 초대 사장 초빙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다. 사장을 공모를 통해 공정하게 뽑으며, 후보자를 검증하고 평가하는 위원회라고 설명을 들었다. 이 위원회에서 응모자들의 서류를 검토하고 최종적으로 면접대상 복수의 후보를 선정했다. 높은 점수는 구청의 국장 출신과 대기업 임원 출신이 받았고, 후자가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했다.

그런데 면접 전날 점심식사를 마치고 연구실에 돌아오니, 신사 세 사람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분들은 구청 간부와 실무자였다. 찾아온 이유는 내일 면접에서 구청 출신을 1순위로 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필자가 난색을 표했다. 그런데 다음 날 면접 직전 분위기를 보니, 웬걸 모두 국장 출신을 지지하는 것이 아닌가? 왜 그런지는 짐작이 갔고 결국 전직 공무원이 초대 사장이 되었다. 필자는 다시는 이런 위원회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 뒤 몇 번을 고사하다가 지인이 부시장으로 있는 서울 위성도시가 설립한 공단의 사장공모에 심사위원이 되었다. 부시장의 간곡한 청을 못 이기고 간 것이었다. 결과는 전직 공무원이 아니라 민간 금융기관 출신이 사장이 되었다. 순진한 필자는 이 도시가 아주 공정한 인사를 한 것이라고 자평을 했었다. 얼마 뒤 함께 심사를 했던 교수를 만났다. 그가 금융기관 출신 공단 사장이 그곳 시장의 중고교 동창생이라 알려주었다. 그 뒤부터 일체 심사위원을 고사하고 있다. 비리여부를 떠나 형식적인 공모에 들러리가 되기 싫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재정자립도가 낮아도 도시정부가 공사를 설립할 수 있다. 선진국 도시에서는 꿈도 못 꾸는 일이다. 예산이 뒷받침되어 설립되어도 각종 비리는 물론이고 예산을 방만하게 운영하면 바로 법적·정치적인 책임을 묻는다.

런던시에 가면 템즈강 동편에 유명한 도크랜드(Dockland)가 있다. 이곳은 대영제국시절 세계를 제패한 최신식 대형 선박을 건조하던 곳이다. 그러나 1960년~70년대에 일본과 한국의 조선업 급성장에 밀려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1980년에 집권한 마가릿 대처 수상은 이곳을 최첨단의 금융센터로 만드는 도시재생사업을 주도하였다. 정부는 런던도크랜드개발공사(LDDC:London Dockland Development Corporation)을 설립하여 이 지역 재개발사업을 맡겼다. 도크랜드는 18년간의 대 역사 끝에 유럽에서 가장 큰 금융센터로 혁신을 하게 되었고, 런던시가 유럽경제의 심장으로 부활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도크랜드가 1998년 재생사업의 준공과 함께 문을 닫았다는 점이다. 설립목적이 달성되었으니 문을 닫는 것이 바로 대부분의 선진국 도시공공기관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 대역사를 성공리에 마친 공사의 임직원들은 혹 실업자가 된 것이 아닐까? 아니다. 맡은 사업을 성공리에 마쳤고, 좋은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으니 다른 도시에서 유사 사업을 주도할 인재로 스카우트되어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이직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도시는 어떠한가? 공사가 만들어지면 영속적이며, 심지어는 비효율적인 공사들의 통폐합은 거의 불가능하다. 올림픽이 끝나 해체했어야 할 올림픽조직위는 체육공단으로 이름만 바꾸어 아직도 존재한다.

공공기관의 비리 제거나 예방도 필요하다. 하지만 재정이나 경영 능력에 문제가 있거나 설립목적이 투명하지 않은 많은 공사들의 대대적인 통·폐합이 절실하다. 이들은 대부분 우리가 내는 피 같은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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