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용만(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장)

문인 소리를 듣고는 싶어 하면서도 문인의 본령을 망각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글을 잘 쓰려는 욕망이 문인의 본령이다, 허명을 얻으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게 창작행위가 아니다. 혼자 외롭게 싸우는 것이 문인의 본령이다. 외롭지 않고 어떻게 감동 어린 작품을 쓸 수 있겠는가!

어느 문예지에서 권두언을 써달라는 청이 들어와 ‘문학의 도구화(道具化)를 막자’는 취지의 글을 쓴 적이 있다. 타락해가는 문단의 현실을 개탄해오던 터라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고 싶었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 해도, 아무리 문단정치와 상업논리가 판친다 해도, 아무리 문학의 대중화가 당위성을 지닌다 해도, 순연한 문학정신만은 존중받아야 하는데, 지금 그게 무너지고 있어 슬프다. 그렇다고 선뜻 나서서 경고해주는 지성과 양심도 보이지 않는다. 대다수 양식 있는 문인들은 간섭하기 싫어 구경만 하고 있으니 문단에서 판칠 사람은 누구일지 뻔하다. 문학을 도구로 삼아 입지를 챙기는 기회주의자나 요령주의자만 득세할 것이다. 더구나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후로는 그런 폐해가 더 성행하고 있다. 문학단체를 선거 득표의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문학의 순결성만을 믿고 묵묵히 글만 써온 문인들, 문학의 본령만을 지키며 외롭게 살아온 그 진짜 문인들은 오히려 소외당하기 십상이다. 그들의 올바른 문학정신이 문학의 도구화를 비판하는 목탁소리로 작용할까봐 견제를 받기 때문이다.

문단은 순결한 영혼들의 세계이다. 창조적인 바보들, 문제적인 바보들이 어울리는 장이다. 사심이 없는 곳이다. 솔직한 곳이다. 정직한 곳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곳이다. 모함하지 않는 곳이다. 싸워도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곳이다. 외로운 곳이다. 고통을 즐기는 곳이다. 슬픔을 즐기는 곳이다. 가난을 즐기는 곳이다. 약고, 눈치 빠르고, 간교하고, 빈틈없는 자들의 활동무대가 아니다. 정치판도 아니고 경제판도 아니다. 이권으로 유혹하는 장사판은 더더욱 아니다.

“사람은 문명이 진보하면 진보할수록 점점 더 배우가 되어가지만 아무도 그런 가면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위선의 가면을 경계한 칸트의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200년 전의 칸트 시대가 아니다.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가 아니라 “속아 넘어갈 수 있다”는 현실이기에 소름이 끼치는 것이다. 위선이 진실이 되는 문단을 상상해보라.

어느 문예지에서 시상(施賞)의 비리에 대해 읽은 적이 있지만, 앞으로 문학상이 부지기수로 불어날 것이다. 문학상을 상품화하는 기업체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이런 꼴을 보려고 문학인생을 택했단 말인가. 하지만 좌절할 수는 없다. 무너져서는 안 된다. 문학의 본령을 지키자. 오염되지 말자. 농락당하지 말자. 예속 되지 말자. 당당해지자. 개인으로 우뚝 서자. 글을 잘 쓰려는 욕망이 문인의 본령이다. 허명을 얻으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게 창작행위가 아니다.

진정한 문인의 정신은 반역에 있다. 비판정신 말이다. 비판정신이 없으면 문인이 아니다. 창작은 새로움의 제시다. 같은 사물을 달리 볼 수 있는 게 반역이다. 그 정신은 창작의 기반이다. 썩지 말아야 한다. 이해득실에 눈독을 들이는 지성이라면 그건 지성이 아니다. 거짓과 위선에 농락당하는 지성은 또 다른 가면일 뿐이다. 눈치 보는 지성도 가면일 뿐이다. 무슨 덕을 보려고 자신의 거룩한 모습에 흠을 내려 하는가. 다시 생각하자. 내가 왜 문인이 되었는지, 그 자문(自問)에 성실히 자답(自答)해 보자. 그 자기성찰이 문학인의 멋이다. 문학의 위대함과 독창성은 바로 거기에 있다. 이제 멋쟁이가 되어야 한다. 스스로 위대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문학은 외롭게 진실을 캐는 작업이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진실의 원형을 찾으려고 애쓰는 지성적인 작업이다. 그 원형에는 신(神)도 포함될 것이다. 문단의 지성이 다른 사회의 지성과 다른 점도 거기에 있다. 만약 문단의 지성이 무너지면 한국의 지성과 양심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런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할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그 염려마저 체념으로 굳어버렸다. 그 타락이 불러올 무서운 결과를 예견해야 한다.

한국문단의 타락은 지금 하루가 다르게 팽창하고 있다. 지금은 돈 키호테 같은 문인이 필요한 시대다. 실천적 의지에 불타 자기 몸이 부서지는 것도 모르고 돌진하는 돈 키호테는 어쩜 오늘날에 꼭 필요한 개혁형의 인물인지도 모른다. 기회주의와 요령주의가 판치는 우리 문단 현실에 가차 없이 창을 들이댈 용사, 그런 돈 키호테를 기다리는 마음은 나 하나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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