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식업 성공스토리> 능수엄마

50회 도대체 원인이 뭐야

 

훌륭한 지휘관은 부대 순시를 할 때 구석구석 살피지 않고도 어느 구석이 불결한지를 잘 알고 있다. 막사 어느 구석에는 아직도 먼지가 껴있을 테고, 어느 구석은 전기 합선이 우려되고, 어느 구석은 누수가 염려되고, 어느 구석은 곰팡이가 껴있을 테고,

 

또 전화벨이 울린다. 벨 소리가 겁난다. 벌써 6월 한 달 동안에 여섯 번째다. 여기저기서 보쌈을 먹고 설사했다는 항의가 빗발친다. 어떤 단체 손님은 거의가 설사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일단 피해를 입은 손님들은 찾아가 사죄하고 해결을 봤지만 도대체 원인을 알 수가 없다. 아무리 주방 내부를 검사해도 뾰족한 수가 없다. 재료, 기구, 청소상태는 물론 물까지 생수 대신 보리차를 끓여서 낼 정도로 샅샅이 살피고 청결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행주와 그릇은 모두 삶아 쓰고, 직원들의 손톱을 수시로 검사하고, 머리카락을 비롯하여 신체 노출을 단속하고, 양념통은 소형 냉장고를 별도로 조리대 옆에 두고 수시로 꺼내 쓰도록 한다. 물수건도 공급업체 제품 대신 별도로 구입해서 냉동실에 넣고 꺼내 쓴다. 도마도 여러 개 장만하여 교대로 삶거나 햇볕에 말려서 사용한다. 육수냉장고도 깨끗이 사용했는데, 그처럼 주의를 기울여도 가끔 배탈 나는 사고가 발생한다.
도저히 원인을 캘 수 없다. 심지어는 직원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혹 누가 해코지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스스로 놀라 가슴이 떨렸다. 죄를 짓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친분 있는 손님으로부터 정보를 얻게 되었다.
“혹 김치에 굴을 넣지 않았나요?”
“네. 넣었어요. 보쌈김치는 생김치여서 싱싱한 맛을 내려고 굴을 섞었죠.”
“생김치에는 굴을 넣어야 시원하지만 여름철에는 굴이 독성을 품어요. 그게 복통을 일으키죠.”
나는 양념에서 굴을 빼고 얼른 안내문을 써 붙였다.

저희 업소에서는 보쌈김치 맛을 돋우려고 생굴을 첨가해왔사오나
|여름철에는 굴이 독성을 품게 되어 부득이 가을철부터 첨가하기로
했습니다. 그 대신 여름철에는 낙지를 넣었습니다.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경영자의 하찮은 무지가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것이다. 내 자신감이 부끄럽다. 그걸 모르고 있었다니, 전문성 없이 재료를 다룬 그 ‘당연한’ 실수를 반성하며 나는 자만심을 억누른다.
원인 규명으로 다시 정상을 되찾았지만 굴을 다루는 해안가를 찾아가 굴의 독성을 알아보았다. 초여름부터 독성을 품은 알이 생기기 시작하므로 뿌연 알을 제거한 후 음식으로 사용하며, 독성이 심해지면 아예 먹지 않다가 가을부터 다시 먹는다고 한다.
내깐엔 주도면밀히 운영해온 것 같지만 허점이 많다는 걸 뉘우친다. 이런 내 실수를 허마두가 꼬집는다.
“내 사유를 방해하는 데는 대포가 필요 없다. 파리 한 마리면 족하다. 파스칼이 한 말이디. 기걸 밥장사에 대입시키믄 이런 말이 되갔디. 식당을 망치는 데는 입지조건이나 기술이 필요 없다. 파리 한 마리면 족하다. 여게서 파리 한 마리가 뭔디를 생각하면 될 거라메.”
그렇다. 파리 한 마리에 해당되는 실수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백수천 가지다. 그 실수를 찾아내야한다. 그런 면에서는 군 지휘관이 밥장사를 잘할 것이다.
훌륭한 지휘관은 부대 순시를 할 때 구석구석 살피지 않고도 어느 구석이 불결한지를 잘 알고 있다. 막사 어느 구석에는 아직도 먼지가 껴있을 테고, 어느 구석은 전기 합선이 우려되고, 어느 구석은 누수가 염려되고, 어느 구석은 곰팡이가 껴있을 테고, 어느 유리창은 헐거워서 떨어질 위험이 있고, 어느 병사는 선병질적이고, 어느 병사는 무모하고, 어느 병사는 편집광이고…
식당 주인도 식당 구석구석을 치밀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가스 불판을 쓰는 업주는 불판이 수십 개 있어도, 한눈에 가스 코크가 모두 잠겨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런 정신은 음식 맛을 내는 데도 마찬가지다.

포장마차에서 <경포대식당>까지 10여 년간 여러 메뉴를 다뤄본 경험은 춘천옥 개업에 유익한 요소로 작용했다. 음식은 손끝의 감각으로 맛을 낸다. 경험 없이는 그 감각이 손끝에 여물지 않는다. 갖은 양념이나 온갖 야채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자신감은 수없이 반복된 시행착오를 통해 축적된다. 음식은 양념의 배합 비율 말고도 재료를 넣는 순서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진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순두부, 비빔밥, 오징어볶음, 조기매운탕 같은 야채나 생선 중심의 기본 메뉴는 물론이고 설렁탕, 갈비탕, 육개장, 해장국, 불고기, 곱창전골, 제육볶음, 돼지갈비, 소갈비, 등심, 차돌배기, 삼겹살 같은 육류 중심의 메뉴와 냉면, 칼국수, 떡국 같은 분식 메뉴를 취급하는 동안 맛의 기본 원리와 맛의 변화 묘미를 터득했을 것이다.
특히 육류를 다룬 경험은 보쌈고기의 질 향상에 보탬이 되고, 냉면을 뽑아본 경험은 막국수를 뽑는 감각성을 익혀온 셈이고, 갖가지 야채와 양념을 다룬 경험은 보쌈김치와 막국수의 맛을 내는 데에 직접 이바지한 셈이다. 그리고 오랜 경험은 운영의 묘로 작용한 것이다. 남한테 말만 듣거나 요식업 책만 읽고 쉽사리 대드는 짓은 편안한 침대잠자리를 길거리 노숙으로 바꾸겠다는 얼뜨기 짓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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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옥 식구 31명의 미녀와 10명의 쾌남을 동해안에 쏟아놓으니 국토의 색깔이 달라지도다.

 

허마두의 머리에서 나온 현수막이다. 진리 해안 모래톱에 걸쳐놓고 단체사진부터 찍는다. 직원들의 복장 색깔이 화려하다. 모자도 형형색색이다. 버스 앞창에는 <춘천옥 동해안으로 대이동>이라고 쓴 종이가 붙어 있다. 버스기사가 내 카메라로 열심히 사진을 찍어댄다.
일정은 미리 송민호가 짜둔 대로다. 오늘 진리에서 주문진을 거쳐 속초까지 갔다가 거기서 자고, 내일은 거진에서 대진을 거쳐 마차진까지 둘러보고 도로 강릉과 대관령을 거쳐 귀경하기로 되어있다.
다시 버스에 오른다. 송민호가 동승하자 직원들 사기가 하늘을 찌른다. 이번 여행은 분위기를 살리고 각오를 새롭게 다지려는 데에 목적이 있다.
“형님 오시는 김에 춘천옥 식구들을 단체로 데려오면 어때요? 일 년에 한 번씩 단체 나들이를 하신다면서 이참에 동해바다를 구경시키세요. 직원들 사기도 오를 거구요.”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 관장)

동해안은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지만 송민호의 말이 그럴듯했다. 아내도 처음에는 황당하게 여기다가 흔쾌히 동의했다. 일박이일인데 하루 더 쉰다고 손님이 왕창 떨어질 것도 아니었다. 출입문에다 이틀간 쉰다고 큼지막하게 써 붙이면 된다. 생각할수록 송민호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탕아를 집으로 돌려보내주는 자상한 경찰관의 마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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