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부가 만난 사람> 최규식 농민

방아 다 찧으셨다고, 쌀은 많이 나왔어요? “에이~ 형편없어. 남들은 작년보다 소출이 많이 났다는데 난 그것만 못해. 막판에 벼멸구가 덤벼서 수확이 확 줄었어. 농약을 칠 수가 있나 원… ‘새누리’인지 뭔지 이름도 잘 생각이 안 나는데 이 품종이 멸구에 약한가봐. 밥맛은 괜찮습디다.”

수원으로 나가살다 나이 50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15년째 틈틈이 농사를 짓는 최규식(서종면 정배리)씨 표정이 썩 밝지만 않다. “벼농사 많이 짓는 양반들 요새 속이 말이 아냐. 정미소에서 아예 수매를 안 한데잖우. 이 동네는 농협이나 양평공사로 수매하는 집이 별로 없고 방앗간에 넘기거나 알음알음 파는 집이 많은데 정미소가 작년에 쌀 맡았다가 손해를 많이 봤다고 올핸 아예 안한데. 명덕골 누구냐 그 양반은 톤백마대로 2개 싣고 갔다가 하나만 찧고 하나는 도로 가져왔더라고. 한 가마에 12만원도 주네마네 하니까 화가 난거지.”

쌀값이 30년 전으로 돌아갔다고 보상하라는 현수막도 많이 붙었던데 여긴 그런 것도 안보이네요?

“누구하나 농사에 관심이 없는 거지. 작년 이장 볼 때 면장님한테 서종면 로고 찍힌 쌀 포장지를 공급해달라고 제안했더니 그러마했거든. 그런데 감감무소식이야. 이장 중에도 농사짓는 사람이 올해 다 빠졌어요. 서종면 이쪽으로는 정미소가 없어 다들 설악면가서 도정하는데 쌀 포대에 ‘가평쌀’이라고 찍혀서 나오잖아. 우리 쌀에 가평마크 찍혀 나온다고. 이런 거 몇 푼 안 드는 일인데… 관심이 없는 거지 뭐, 농사를 짓든 말든. 아니 쌀값 올려준다고 해서 찍어준 대통령도 나 몰라라 하는 판에 내가 순진한 거지. 외국에서 매년 수입하고 우리 농사지은 것 몇 년 씩 쌓아 묵히다 동댕이치고… 이건 아니잖아? 쌀이 남으면 북한에도 보내고 제3국에도 원조하고 그래야 하는거 아닌가. 몇 년씩 묵혀서 군인들 주고 이게 말이 되냐고. 북한에 주면 핵폭탄 만들어서 못 준다던데 쌀이 무슨 플루토늄이야? 핵폭탄 만들게… 그쪽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 하잖우? 한쪽은 없어서 굶어죽고, 한쪽은 농사짓다 빚에 쪼들려 죽고… 이거 죄받을 짓이야. 박근혜도 ‘통일대박’ 어쩌고 했잖아.”

이런 말씀 부담스럽지 않아요?

“이런 소리하면 다 빨갱이래요. 정치하는 사람들하고 종편인가 뭔가 TV에서 만든 거지. 빨갱이가 무슨 말인지 알고 떠드는지 원… 정치하는 사람들 1년만 농사 지어보라고 해야 돼. 입으로만 떠들지 말고… 농민들 못 살겠다고 논 쓸어 메우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워. 그러다 식량 부족하면 그땐 끝장난 거요. 이런 생각하면 열불이나. 조 사장, 담배 하나 줘 봐.” 한숨 섞인 담배연기가 찌푸린 하늘로 파고든다.   

배달부=조병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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