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 성종규 서종면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25

 

마을만들기가 훌륭한 민주주의의 학교가 될 수 있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주로 마을이라는 생활밀접성 때문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라고 하면 마치 정치적 용어처럼 생각하고, 정치하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나아가 민주주의라고 하면 꼭 정치적인 문제가 소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란 어렵거나 멀리 있는 말이 아니다. 그 공간적 범위가 어디이든 주민 또는 시민, 국민이 그 마을이나 사회나 국가의 주인이 된다는 말이다. 초등학생들이 학급 반장 선거에서 민주주의를 경험하듯, 바로 그런 것이다.

마을만들기는 우선 공간적 범위에서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본다면 4년마다 한번 씩 선거일에 동그라미 몇 개 찍는 행위 이상으로는 민주주의의 기회를 좀처럼 가지지 못하는 반면, 지역사회, 더 나아가 마을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생활에 접하여 주인이 될 수 있다.

나아가 공간적 범위 뿐만아니라 소재의 측면에서도 쉽게 생활과 밀접한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다. 대부분의 소재들이 생활에서 직접 부딪치는 것들이라는 점은 말하지 않아도 당연하다. 더구나 자신의 지역사회나 마을에 대해서는 누구나 관심도 많고 더 많이 알고 있다. 또한 책임성의 측면에서도, 국가에 대한 국민으로서의 책임감보다는 좀 더 가깝게 느낀다. 생활에서 직접 부딪치는 주제들에 대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고도 많다.

일본 삿뽀로시의 중심거리인 오토리(大通り)에서는 상인들을 중심으로 마을만들기를 추진해 나갈 조직체로서 주식회사를 만드는 데 까지 발전했다. 사진은 삿뽀로오토리마을만들기주식회사(札幌大通まちづくり株式会社)의 창립총회.

인간관계적 범위에서도 그렇다. 민주주의란 보통 개인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다수의 관계 속에서 제기된다. 그런데 국가적 차원이나 거대 도시의 경우에는 낯선 사람들과 관계하는 반면, 마을에서는 마음만 열면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사람들과 뜻을 나눌 수 있다. 인간적인 정이 바탕이 되어 나누는 주체적 관계성은 낯선 이들과의 그것보다는 훨씬 재미있고 쉽고 행복할 수 있다.

마을만들기는 내 생활과 이웃에서 일어나는 민주주의의 과정이다. 자신의 삶과 동떨어져 저 멀리 있는 정치적인 사안에만 들떠 있는 그런 민주주의와는 다르다. 물론 국민으로서 국가적 차원의 민주주의적 주제들에 대해서 무관심하면 안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마을이 더 가까이 있긴 하지만, 우리는 마을의 주민이기 이전에 우리나라의 국민이어야 할 책무가 더 크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멀리서부터 찾지는 말자는 얘기다. 내 가까운 곳에서 찾고 경험해 나가면, 내 이웃과 함께하고 생활의 주제를 중심으로 공감해 나가면, 국민으로서의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기에도 더 쉽고 알찬 길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마을만들기는 그런 의미에서 무당파성을 띤다. 민주주의라고 하면 정당들의 슬로건이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어느 정당이라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정당들은 마치 민주주의 경쟁을 하는 양 내세운다. 그리하여 민주주의를 말할 때는 무슨 정치적 견해나 특정 당파성을 띠고 있는 것처럼 오해를 받아 불편하기도 하고 화합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마을만들기는 주민이 함께 자신의 마을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으로서 무당파적이다. 마을의 민주적 화합에 훌륭한 무기이고 민주주의의 아름다운 학교이다.

일본 삿뽀로시의 상업중심거리인 오토리(大通り)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시민공원. 시민들로 구성된 마을만들기 조직의 힘에 의해 관리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만들기가 극복해야 할 문제들도 없지 않다. 마을이라는 폐쇄성 속에서 나오는 갈등이 그렇다. 국가적 차원이나 큰 도시들 같이 넓고 열린 공간에서는 갈등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원칙과 질서에 의해 극복되지만, 폐쇄적인 공간 속의 밀접하고 친근한 관계에서는 인간적인 관계를 앞세워 합리성이나 객관성이 유지되지 않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으며 작은 갈등도 합리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폐쇄된 공간이 오래 지속되어온 탓에 외부와의 관계나 새로운 도전에도 보수적이거나 방어적일 수 있다. 마을만들기가 생각보다 힘든 이유다.

다음 회에서는 마을만들기의 주체를 살펴보면서 이러한 문제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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