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부가 만난 사람-차순재 상인>

커피한잔 하고 가셔. 추석에 재미 좀 보셨어요? 양평읍 굴다리옆 구멍가게 ‘동신상회’ 차순재(72) 사장님은 먼발치에서도 알아보고 믹스커피 두 잔을 들고 나온다. 큼직한 뿔테 안경 너머로 나이를 잊은 듯 안광이 예사롭지 않다.

“그냥 하는 거지 재미는 무슨… 이 나이에 앉아 놀고 있을 순 없고 이거 해서 큰돈 번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소소하게 벌어서 용돈 쓰고 애들 간식거리나 하는 거지. 이 장사하다보니 여기저기 기부해야 하고, 우리회원이 얼만데 봉투도 많이 해야 돼 그거 버는 거지.”

오일 장날이나 날씨가 좋으면 길 건너 장마당이나 버스정류장 옆에 과일전을 펼치고 손님을 맞는 차 사장 옆에는 항상 장기판이 따라다닌다.

‘오늘은 장기 안두세요?’ “왜 한판 두시게? 내가 요즘 인터넷에서 승률 70%가 넘어. 내가 가르친 사람이 올해 서울시 대회에서 2등 했대. 양평에선 내가 챔피언이야. 아주 어릴 때 동네 노인네한테 장기를 제대로 배웠어요. 박포장기라고 들어 봤수? 묘수풀이 같은 건데 옆에 바람잡이랑 다 짜고 하는 거거든. 어려서 남산에 가면 양동에서부터 장춘단 공원까지 양회포대 깔아놓고 박포장기판이 쭉 늘어섰는데 내가 가면 그 양반들이 슬금슬금 다 접었어. 원래 그 사람들이 처음엔 조금씩 져주다가 판을 키워서 주머니 털어 먹는 작자들인데 나한테는 안됐지. 한판에 100원부터 시작하는데 금방 몇 천원이 넘어가요. 그때 군인 상사 봉급이 380원이었어 내가 열댓 살 먹어서 한번은 친구랑 가서 집 한 채 값을 땄는데 겁이 나더라구. 그래서 화장실 갔다 온다고 하구선 냅다 도망갔지. 그 뒤로 나만 보면 장기판 덮읍디다. 근데 그거 돈 안 모여 박포가 큰 도박이야.”

플라스틱 의자에 장기판을 마주했다. 바둑의 제왕 이세돌의 선비형 손가락과는 비교도 안 될 망치같이 생긴 손으로 장기알을 놓는다. “면상장기라! 싸움장기 좋아하시나?” ‘제가 아니고 사장님이 왕년에 공중부양 좀 하셨겠는데요.’ “으흠, 왕년에 서대문 네거리에 꼽추와 발발이라고 하면 다 알아 봤지. 내가 발발이야. 꼽추는 내 친구인데 진짜 꼽추인데도 운동신경이 엄청 좋았어요. 나는 체구가 작으니까 발발이구. 당시 을지로 4가에 유명한 합기도장이 있었는데 거기서 배웠지. 젊어서야 좀 날랐지. 인체엔 360개의 혈이 있는데 그 혈 자리를 한방에 제압하는 게 중요해. 그런데 싸움은 피하는 것이 최상이지. 어리석은 사람이 제힘만 믿고 덤비는데 그럼 맨날 경찰서 들락거리게 돼. 그게 하수인 거라.”

"사실 난 어머니 아버지 얼굴도 몰라 6·25때 다 돌아가서 남의 손에 자랐어. 고향이 은평구 갈현동인데 지금도 친구들하고 가끔 연락은 해. 이 장사하다 보니 남들 놀 때 일 해야 되잖아. 이번 추석에도 요기 가까운 장모님 산소에 다녀온 거 말구는 사람노릇을 못해. 1970년에 양평으로 왔어요. 사실은 죽으려고 온 거야. 근데 예비군 소대장을 맡기더라고. 와보니 외지 사람이라고 괄시를 합디다. 그때 솜씨 좀 발휘했지 뭐. 그 사람들하고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어. 그러다가 지금 집사람 만나서 가정 이루면서 사람 된 거지, 하하. 이 장사도 이젠 힘들어 애들한테 술이나 담배를 팔면 영업정지에 벌금내고 사복입고 화장하고 다니면 청소년인지 모르잖아. 근데 눈을 보면 감이 와. 장사는 상대방 눈을 보면 물건을 살 사람인지 흥정만 하는 사람인지 정직한 사람인지 다보여. 글쟁이는 그렇잖우? 신문하고 글 쓰는 사람들은 적도 많이 생길 거야. 되도록 평소에 칭찬을 많이 해보셔. 사람은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몰라.”

“뭐해? 장군이야. 그냥가면 어떻게 해. 장사하는 사람 시간 빼앗았으면 대가를 치르고 가야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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