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유영표 몽양여운형기념관 관장

박근혜 대통령의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놓고 여러 가지로 말이 많다. 우선 대통령의 연설문에서 가장 기초적인 사실관계가 틀리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안중근 의사의 순국 장소를 뤼순 감옥이 아니라 하얼빈 감옥으로 잘못 언급한 것이다. 청와대 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키면서도 밀어붙이는 여러 현상들을 설명해주는 대목인 것 같다. 박 대통령은 ‘건국 68주년’이란 표현도 썼다.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이 1919년 3·1운동으로 건립됐다고 명시하고 있다. 1948년에는 정부가 수립됐을 뿐이다. 1948년 8월15일 관보에도 대한민국 30년이라 표기돼 있다. 뉴라이트들이 추앙하는 이승만 정권에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의 표현은 반헌법적 주장이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박 대통령 취임 이후 대북 제안이 전혀 없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대신에 북한 당국의 간부들과 주민들을 향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새 기회를 제공’한다고 발언해 북한이 예민하게 여기는 흡수통일의 분위기를 띄웠다. 한마디로 대화하지 말자는 얘기다. ‘7·4 남북공동성명’에서부터 ‘10·4 남북정상선언’에 이르기까지 남북 지도자들이 합의해왔던 ‘자주’, ‘평화’, ‘상호존중’의 정신에 따라 우리가 주도적으로 남북문제를 풀어가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들이 역주행하는 가운데 이번 광복절에 즈음해서 민간부문에서는 눈에 띄는 행사들이 많이 있었다. 광복절은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날을 기리는 날인만큼 과거에 대한 기억과 청산, 그리고 극복이 주요 내용을 이루고 있다. 이날을 전후해서 치러진 세 가지 행사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첫째, 8월13일 전주 견훤로 기린봉 초입에서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가 ‘친일 반민족행위자 이두황(李斗璜) 단죄비’ 제막식을 가졌다. 이두황(1858∼1916)은 임오군란 후에 무과에 급제, 동학농민혁명 때는 많은 동학군을 학살하고 패퇴시켜 친일파 무관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미우라 공사, 우범선과 함께 명성황후 암살에 직접 군사를 이끌고 가담했다. 친일 공로로 전라북도 도장관(현 도지사)의 요직을 지내면서 일제의 토지수탈에도 협력했다. 그가 죽은 지 100년만의 단죄. 무덤은 전주 완산구 기린봉 중턱에 있고 단죄비까지는 365m의 거리. 단죄비 설립에 필요한 토지 확보와 제작비 마련에 꼬박 5년이 걸렸다고 한다.

둘째, 15일 정오 서울 강북구에 있는 근현대사기념관에서 독립민주기념비 제막식이 열렸다. 한 지역의 백범 김구 선생 조형물이 훼손되고 방치되어 있는 모습을 본 유정호씨와 김윤민씨가 지난해 온라인을 통해 조형물 모금운동을 벌였다. 시민 626명이 자발적으로 성금 3000만원을 마련했고 이는 민족문제연구소에 전달돼 독립·민주정신 기념 조형물 제작에 쓰였다.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부부 조각가 김운성·김서경씨가 재능기부 형태로 조형물 제작에 참여, 강북구는 근현대사기념관 옆에 장소를 제공하고 미관작업을 지원했다.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우리가 앞으로 이룩해야 할 것은 평화통일”이라며 “기념비는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우리의 약속과 다짐”이라고 강조했다.

셋째, 8월17일 서종면사무소에서 ‘3.1독립만세항쟁기념공원’ 준공기념식을 가졌다. 양평은 경기도에서 개성 다음으로 3·1운동이 일어났고 규모면에서도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했다. 서종면은 양평에서 처음 만세항쟁이 일어난 곳이다. 기념공원 조성사업은 주민성금과 양평군의 사업비 지원으로 주민들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옛 문호장터 부근인 면사무소 옆 작은도서관 건물의 도로 쪽 벽면을 가로 12.3m, 세로 3.6m 타일벽화로 꾸몄다. 이 공원은 이러한 역사적 의식을 바탕으로 서종면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낸 결실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서종면 이장협의회, 주민자치위원회, 새마을남녀지도자회, 청년회 등 면내 5개 단체가 한뜻이 되어 기획하고 움직인 것이다.

‘양평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가 민간주도로 전국 군단위에서는 최초로 소녀상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양평 재래시장 만세 터에 내년 3월1일 건립을 목표로 활동, 모금 목표금액 6000만원의 20% 정도를 달성했다고 한다. 양평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양평을 변화시키고 대한민국을 바꾼다는 자부심을 가져볼만하다. 양평이 배출한 대한민국 최고의 지도자 몽양 여운형 선생이 내년에 70주기를 맞는다. 우리 민족이 갈망하는 “자주독립, 평화통일”을 외치는 몽양 선생의 외침이 광복절을 맞아 더욱 귀에 쟁쟁하다.

저작권자 © 양평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