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지방자치와 면장<2>

글 싣는 순서

<1>직선제에서 임명제로
<2>‘동네 대통령’의 권력
<3>동장 공모제 새바람

 

양평시민의소리는 기획 시리즈 ‘지방자치와 면장’을 연재한다. 첫 번째 주제였던 임명제에서 직선제로, 다시 임명제를 거듭하던 우리나라 시·읍·면장 선출의 변천사를 살쳐본데 이어 두 번째 순서는 ‘동네 대통령의 권력’이다.

주민들과 술 잘 마시는 면장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 게 양평군 공직사회의 풍토다. ‘현장 행정’이라는 명목으로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잦은 면장일수록 능력 있는 공직자로 통한다. 그러나 현장 행정은 단순히 현지에 나가 일하는 게 아니다. 농촌 현실에 맞는 행정, 도움을 주는 적극 행정이 현장 행정이지 주민들은 대낮부터 고주망태가 된 면장에게까지 면죄부를 주지는 않았다.

팀장 시절엔 멀쩡하던 공무원이 사무관 승진 후 면장이 되고부터는 ‘안하무인’이 되기 일쑤다. 지위와 권력을 앞세워 갑(甲)의 횡포를 부리기도 한다. 퇴임을 앞둔 공무원은 면장을 그저 쉬러가는 자리로 인식한다. 마을 행정에는 관심이 없고 알게 모르게 법망을 피해가며 지방선거의 전위대 역할까지 하려고 든다. 심지어는 자신에게 유리한 사람을 이장 혹은 주민자치위원(장)으로 선출하려 한다. 

 

면장을 바라보는 눈… ‘지방자치가 동네 사교클럽인가’

주민들 “대낮 술판, 사무실에선 낮잠…
민의 풀어낼 말단의 임무 망각” 눈살
독선적 행동, 이장들이 교체 요구도

 

“동장에서 대통령까지 우리 손으로!”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민중의 슬로건이었다. 그렇게 직선제를 쟁취하고 그 이후 지방자치제가 실시됐지만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대통령직선제를 하면 폭압적인 독재정치는 사라질 줄 알았다.

지방의원과 시도지사, 시장군수, 국회의의원은 우리 손으로 뽑는데 정작 읍면장은 임명제로 남아있다. 행정조직의 최말단에서 민의(民意)를 안고 풀어내야 할 임무가 있는 읍면장을 우리 손으로 선출하지 못하는 것이다. 주민이 뽑은 이장과 통장의 임명장도 결국은 읍면장이 준다.

이렇다보니 면장은 지방공무원이 퇴직할 시기에 거의 명예직으로 내려오는 자리가 됐다. 무기력하게 연명하면서 의욕도 의지도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요즘에는 갓 사무관으로 승진한 공무원이 면장으로 가기도 하는데, 일 잘하던 팀장이 면장이 되고부터는 배가 나오기 시작하고, 아무 주민들에게나 마치 부하 대하듯 반말 비슷하게 말을 놓기까지 한다.

“아이고, 말도 말아라. 대낮에 술에 취한 면장을 업고 면사무소로 데려간 적도 있다. 그러고는 숙직실에서 한참동안 잠을 자더라.”, “면장이 알량한 예산권을 가지고 마을 기관·단체를 길들이려 하는 것 같아 눈꼴사납다.”, “면장들이 근무시간에 술에 찌들어서 다니는 게 현장 행정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잘못된 관행이 마을 발전을 해치는 줄 모른다.”

양평군 주민들이 면장들의 행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더 이야기할 게 있는 것 같아 물으니 “… 그건 차마 말 못 하겠다”고 한다. 한심하다는 표정의 주민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꼴불견’이라는 것이다. 마을의 예산권을 쥐고 갑질하는 면장이나, 대낮에 술에 만취해 업혀 들어가는 면장을 보는 주민들은 비위에 거슬리거나 우스워서 차마 그 광경을 볼 수가 없을 지경이라는 것이다.

자치단체의 청렴도 수준이 대외적인 경쟁력의 지표가 되고 있다. 주민들이 요구하는 공직자의 청렴 기준, 특히 사무관 이상 고위공직자에 대한 청렴 기대 수준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양평군내 일부 면장들이 비도덕이고 상식 밖의 언행을 일삼아 군민의 지탄이 대상이 되고 있다. 양평군이 지난 2월1일 대회의실에서 전체 공직자를 대상으로 청렴 생활화를 다짐하는 결의대회를 갖고 있다.

A면장의 비도덕적인 언사는 이미 보도(본지 8월4일자 1면)된 바 있다. 직원과 주민들에게 귀에 거슬리는 반말을 일삼고, 주민들과 아침 식사하는 식당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워 물고, 흡연을 자제해달라는 이에게 막말을 일삼은 사실이 알려졌다. A면장은 사무관으로 승진해 면장으로 임명된 사례다. 팀장 시절엔 나름 자신의 업무에 몰두했고, 평소 언사도 이 지경까지는 아니었다는 게 그를 아는 사람들의 중론이다. 면장이 ‘술 마시는 동네 대통령’으로 인식된 나머지 비롯된 일이다.

2년 전에는 ‘안하무인 면장’을 바꿔달라며 이장들이 군에 탄원서를 낸 적도 있다. 이장들은 “면민과 이장들에게 독선적인 행동을 일삼는 면장과 더 이상 함께 일할 수 없다”며 “회의 때도 자기 생각과 다르게 진행되면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는 바람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면장의 인사를 놓고 이장들이 사상 초유의 집단행동을 하는 게 바람직한 모양새는 아니지만, ‘오죽하면 그랬겠느냐’는 게 당시 분위기였다.

한 퇴직 공무원은 이런 말을 했다. “공무원으로 산다는 것과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같은 삶 같지만 다른 것이지요. 공무원은 무한봉사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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