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노래하고 위로하는 음악가
밴드 ‘11월’의 싱어송라이터 조영민 인터뷰

“눈 감은 세상 속 내 모습을 보며…(중략) 용기가 필요해, 사랑이 필요해” -11월, 기다려 中-

사회가 우울감에 잠기고 서로가 서로를 피한다. 상대방의 입을 볼 수 없고 대문을 걸어 잠금과 동시에 대화의 문도 막혔다.

모두가 일상을 잃어버린 시기,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노래하는 뮤지션을 소개한다.

비가 내리던 지난 25일 강상면의 한 카페에서 ‘위로하는 음악가’ 조영민(45)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 자기소개와 근황을 말해 달라.

너와 나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6년 차 밴드 ‘11월’의 싱어송라이터 조영민이다. 학창 시절까지 양평에서 자란 양평 출신이고 서울에서 6년 지내다 결혼하며 귀향한 지 16년이 지났다. 데뷔 후 정규 앨범을 2장, 디지털 싱글 3장을 냈다.

요즘은 3집 발매까지 2곡이 남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각종 공연‧축제가 취소돼 어쩔 수 없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지만, 그만큼 곡 작업을 더 한다.

영감을 받기 위해 책도 읽고 있는데, 최근엔 김애란 작가의 산문집을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라 책이 나올 때마다 찾아 읽는다.

‘위로워십’이란 워십팀으로도 활동 중이다. 말 그대로 위로하기 위해 지은 팀 이름이다. 앨범 작업, 개인레슨 등을 하며 빠른 듯 빠르지 않은 일상 속에 있다.

▲ 밴드 ‘11월’ 소개를 한다면…

처음 밴드가 만들어질 때는 6인조였고 큰 공연도 2번 했다. 그런데 6명이 ‘음악’만 하기는 힘들더라. 각자의 사정과 시기가 맞지 않아 기타(조영민)와 건반(신보라) 2명이 남아 1집을 냈다. 이후 2집 때 퍼커션(한다혜)이 합류해 지금의 3인조 ‘11월’이 됐다.

11월이란 이름의 뜻은 1이라는 숫자가 두 개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다. ‘당신과 나의 이야기’라는 뜻을 담고 있다.

▲ 추구하는 음악적 가치는…

밴드의 슬로건은 ‘나른했던 어느 날 오후에 시작된 평범한 우리들의 특별한 이야기’다.

싱어송라이터는 강상면에 사는 두 아이 아빠, 건반은 용문면 동네 처자, 퍼커션은 옥천면 출신 신혼 댁으로 모두 양평사람이다. 특별한 사람이 따로 있겠나.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가 음악이 되니 특별해지는 것이다. 아이와 대화하는 것처럼, 자전거를 타다 동네 아저씨와 인사하는 것처럼 누구나 할 수 있는 너와 나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든다.

▲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중학교 2학년 때 교회 형들이 기타 치는 게 멋져 보여 누나가 빌려온 기타로 어깨너머로 외워 따라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음악을 접하고 입대 전 첫 곡을 썼는데 신기하게도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곡이었다(웃음).

군대 안에서 열 몇 곡을 쓰고, 전역 후 음악을 하려 했으나 “영민이가 음악을 해야 한다, 아니다”를 주제로 가족 투표가 열렸다. 지금 생각해도 이런 집은 흔치 않다.

투표 결과, 2:2로 동표가 나와 어쩔 수 없이 음악을 포기했지만 그게 자극제가 돼 오히려 음악을 놓지 않는 지금의 결과를 냈다.

돌이켜보면 나의 20대는 꿈을 찾는 방황의 연속이었다. 일을 하고 결혼을 해서도 음악을 가슴 한쪽에 소중히 품고 있었지만, 명확히 답을 내리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음악을 하지 않아도 행복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 진짜 ‘나의 음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부담을 내려놓은 그해, 첫 앨범이 나왔다.

▲ 창작의 방식과 영감의 원천은…

정규앨범을 만들 땐 내 위치에서 방향을 정한 뒤 흐름을 따라 쓴다. 1집은 위를 보며 썼다. 절대자와 나와의 밀접한 관계가 곡의 원천이었기에 나의 신념이 녹아있다. 2집은 주위를 둘러본 앨범이다. 내 가족, 주변 사람들, 누군가의 이야기 등 주위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느껴지는 앨범이다.

곡의 영감은 어디서 언제 튀어나올지 모른다. 나와 있는 누군가, 혼자 있는 시간, 운전대를 꺾는 순간, 스파이더맨을 그리는 아들이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밖에서 영감이 떠오르면 녹음기를 켜서 흥얼거려 놓고 작업실로 돌아가 곡을 쓴다. 굳이 규정하자면 거창하지 않은 일상의 부지런함이 아닐까.

▲ 양평에서 음악가의 삶이란…

마냥 만족스럽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뮤지션에게 공연하고 싶을 때 공연하는 것은 최고의 행복이다. 그러나 양평엔 설 자리가 생각보다 많이 없지 않나.

뮤지션과 대중 간의 소통이 활성화돼 부르고 싶을 때 부를 수 있고, 듣고 싶을 때 들을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한다.

그렇게 된다면 난 유명하지 않아도 이곳에서 음악하는 게 행복할 것 같고, 주말에 홍대를 찾을 생각도 안 할 것 같다. 양평에서 온 밴드에 관심 가지는 사람이 홍대에 몇이나 되겠나. 우린 ‘양평’에서 ‘우리의 공연’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쉐아르 소극장, 양평 카페 등을 찾아다니며 공연을 기획하지만, 우리에겐 너무 적은 횟수다. 3집이 나오면 ‘기획공연’을 더 많이 하고 싶다.

양평에 우리 같은 팀이 한둘만 더 있어도 서로 힘이 돼주며 더 많은 공연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양평에 우리같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있나?

▲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어느 날 새벽 2시 잠에서 깼는데 ‘수북한 사랑’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다시 잘까 말까 고민하다 작업실로 가 기타 줄을 튕기며 멜로디와 리듬을 만들고 다시 잤다.

그 곡이 ‘수북한 사랑’이란 곡이다. 정말 꿈같지 않나(웃음).

▲ 의외의 곳에서 내 음악이 나와서 놀랐던 기억이 있나…

SBS ‘동상이몽 너는 내 운명’에서 우리곡이 나온 적 있다. KBS ‘생생정보통’ 만두전골편에서도 ‘아침 자전거’라는 노래가 나왔다. 내가 발견한 것이 아니라 지인이 발견해서 알려줬는데 그 당시 나도 놀랐다. 우리 노래가 일상생활에 녹아드는 건 멋진 일이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 삶의 BGM이 되고 싶다.

▲ 기억에 남는 공연, 관객이 있다면…

양평고등학교 강당에서 했던 2집 발매공연을 잊을 수 없다. 450명의 관객이 우리 음악을 듣기 위해 그곳을 가득 채웠던 광경은 꿈같은 장면이었다. 6인조 밴드 시절 단 2번 했던 공연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펑펑 울었던 관객이 기억난다. ‘새처럼’이라는 노래에 “내 아이야 새처럼 아니 저 새들보다 더, 더 높이 날 수가 있어 자유롭게 말야”라는 가사를 부를 때 어떤 엄마와 눈이 마주쳤는데 서로 알 수 없는 감정이 통하며 울컥했다.

알고 보니 아이를 많이 혼내고 불편한 마음으로 공연을 왔는데 ‘새처럼’을 들으며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어 울었다고 한다.

▲ 음악가가 아닌 조영민이란 사람은…

두 아이의 아빠이자 가장, 한 여자의 남편, 누군가의 음악 선생님 등 많은 역할이 있다. 음악가로서는 쉽게 누릴 수 없는 평온한 생활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사람’을 좋아하고 카페에서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시간을 소중히 하는 사람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는 커피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커피가 주는 혼자만의 시간이 좋다. 대부분의 사람이 산책하며 자전거 페달을 즐거이 밟듯, 음악가가 아닌 난 아침에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 향후 계획과 목표는…

올해 꼭 3집을 낼 계획이다. 위로워십도 유튜브로 활동하고 있는데 최근에 올린 영상 조회 수가 1만5000이 넘었다.

우리 음악을 기다린 사람들에게 앨범 한 개 분량의 곡을 ‘짠’하고 선물하고 싶은 한 해다.

목표라면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나가는 것? 아마 모든 뮤지션의 꿈이지 않을까(웃음).

36살 이후의 음악적 열정은 후배들과 쉐아르 소극장을 개관하며 다시 불타오른 것이다. 지금 내가 음악을 하는 것도 전적으로 나만의 힘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홍대 유명 인디밴드, 뮤지션을 양평으로 불러 양평 내 문화 활성화에 많은 힘을 쏟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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