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윤례 소설가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둔 화분에서 동백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빨갛게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처럼 열두어 송이의 꽃망울들이 내내 오므리고 있더니 어느새 활짝 피었다. 자치센터에서 강좌를 마치고 우르르 나오던 사람들이 복도에서 빨간 동백꽃을 발견하고 신기한 듯 모여들었다.

“와, 이뻐라. 이 부드러운 꽃잎 좀 봐.”

“어머, 조화인줄 알았는데 진짜 꽃이네.”

“어, 장미인줄 알았는데 동백꽃이네. 이쁘다.”

한마디씩 하더니 빨간 꽃잎을 만지고 윤기 나는 이파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마른 나뭇가지가 톡하고 부러질까봐 조마조마했다.

“이렇게 이쁜 꽃을 잘 보이게 한가운데 두어야 여러 사람이 볼 수 있지. 이렇게 구석지에 두면 잘 안보이잖아.”

하면서 화분을 옮기려고 했다.

“이 자리가 햇볕이 잘 들어요. 이 꽃망울들이 피어나려면 햇볕이 있어야 되거든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분을 끌고 밀고 하더니 빨간 꽃망울 하나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러자 머쓱해하며 사람들이 재빨리 사라져버렸다. 떨어진 꽃망울을 주워 화분 안에 넣었다. 속상했다.

동백꽃 화분은 큰애가 초등학교 1학년 때 꽃집에서 샀다. 신학기 때 마침 동백꽃이 예쁘게 핀 화분 두 개를 마련해 교실 복도에 놓았다. 학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동백꽃 화분은 해마다 설 무렵이 되면 새해 선물처럼 열두어 송이씩 빨간 꽃을 피워냈다. 아이들은 동백꽃을 그림으로 그려 상도 받고, 글짓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던 동백꽃이 작년 설날에는 꽃망울만 맺힌 채 끝내 한 송이도 피우질 못했다. 안타까웠다. 그동안 많은 기쁨을 주었으니 자유롭게 자연으로 돌려보낼 때가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이라도 있으면 심어주련만. 그렇다고 선뜻 마당 있는 사람에게 줄 수도 없었다. 언제든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늘 동백나무 심어줄 곳을 물색하고 다녔다.

언젠가 작은애가 학교 앞에서 노란 병아리를 사온 적이 있다. 병아리가 얼마나 건강하게 잘 자라는지 아파트에서 더 이상 키울 수 없는 중닭이 되었다. 아무리 박스에 담아놓아도 날아서 밖으로 튀어나오고 닭똥 냄새는 얼마나 지독한지, 또 얼마나 시끄럽게 꼬꼬댁거리는지. 할 수없이 시골을 돌아다니면서 닭이 잘 클 수 있는 집을 물색해 편지까지 써서 보낸 적이 있다.

그러다가 마침 자치센터 옆에 공터를 발견했다. 거기에 심으면 언제든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심어 주려고 했는데 햇볕이 잘 들지 않고 비탈져서 마땅치가 않았다. 사실은 그 자리에 금계국, 데이지, 구절초, 코스모스를 심어 피고지고 하는 재미에 빠져 심는 것을 깜빡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가보니 제초작업을 했는지 정성껏 가꾼 꽃밭이 싹 밀려 깨끗했다. 다행히 막 피어나기 시작한 코스모스는 살아남아 초겨울 늦게까지 꽃을 피웠다.

결국 동백나무는 옮겨 심지 못해서 올해도 꽃은 기대를 하지 않고 있던 참이었다. 여덟 살이던 큰애가 스물다섯 살이 될 때까지 18년 동안을 우리에게 동백꽃을 선물했으니 그저 고맙기만 했다. 그런데 꽃이 피어났다. 해마다 동백꽃이 필 무렵이면 꽃망울을 잔뜩 달고 있다가 한 송이 한 송이 선물처럼 피워내던 동백꽃이 또 피었다. 한 송이 활짝 피었다가 눈물처럼 뚝 떨어지고 또 한 송이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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