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공정, 평등이라는 단어를 요즘 자주 듣는다. 정의롭고 공정하며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보자는 정치권의 주장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필자가 뉴욕의 코넬대학에 교환교수로 있을 때 하버드대학 마이클 샌들(Michael Sandel) 교수가 저술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는 기사를 보았다. 깜짝 놀라 그분의 강의를 인터넷으로 보았더니 어려운 주제를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잘 설명했다.

정작 미국에서는 10만부도 팔리지 않은 딱딱한 주제의 책이 왜 한국에서 그리 많이 팔린 것일까 진짜 궁금했다. 생각 끝에 우리 모두가 정의로운 사회를 갈망하고 있고, 그 책에 답이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란 결론을 냈다. 우리사회가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던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대선부터 공정과 정의라는 단어가 우리나라 정치권의 화두가 되었다. 공정과 정의가 권력실세들의 부정과 불공정으로 퇴색되고 있고, 대학이 주로 관련된 점이 아이러니하다.

필자는 대학은 정의의 최후의 보루라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은 너무 다르다. 정치와 자본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고 있다. 많은 선진국에서 대학과 교수의 학문적 자율성이 확실하게 보장되고 있다. 20세기 대학이 국가 성장을 뒷받침한 독일과 미국은 대학 자율성을 철저하게 보장한다. 산업혁명을 제일 늦게 성취했음에도 이 두 나라가 최강대국이 된 것은 대학이 정치이념에 휘말리지 않도록 학문적 독립을 확실하게 보장했던 때문이다. 저명한 교육철학자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는 저서 <인간교육론>에서 ‘국가는 대학에 대한 간섭은 하지 말고 지원은 가능한 늘려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는 인류의 보편 가치에 부합하는 대학이 선진국가를 만드는 든든한 초석이 된다고 했다.

현재 우리나라 대학은 정부통제와 기업화 등으로 학문적 자율성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위기 상황이다. 대학이 등록금도 정할 수 없고, 정부지원에 목매이다 보니 권력 눈치 보기가 만연해 있다. 대기업에 넘어간 일부 대학은 시장메커니즘을 적극 추종하고 진리탐구 대신 상품 생산기능에 몰두한다. 대학이 기업화되었거나 정치판 시녀가 되고 있다.

아무리 정치적 논란이 커도 정의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이럴수록 대학은 정의수호의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 진정한 정의와 공정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야 할 것이다.

조아무 전직 장관과 관련 사건이 새해에도 논란이다. 심지어 자녀의 오픈북 시험에 부모가 답을 풀어주었다 한다. 필자는 미국대학에서 이런 행위가 얼마나 큰 부정인지 확실하게 배웠다.

석사생 시절 A라는 국내 유명대학 졸업생이 후배로 왔다. 한 학기가 끝난 다음 그가 말없이 사라졌다. 1년 뒤 그의 룸메이트를 만나 물어보니, 인용표시 없이 기말리포트를 제출해 담당 교수가 F학점을 주고 상벌위원회에 넘겼는데, 퇴학결정을 받았단다. 한국에서는 혼내줄 일인데 짜깁기로 쓴 것 가지고 퇴학이라는 엄한 벌을 준 것이다.

필자는 지도교수 조교로서 학부생들 시험 채점을 했다. 어느 날 남학생이 찾아와 채점이 틀렸다고 했다. 교수님은 캐비닛에 보관된 답안복사본과 대조하고는 학생에게 원본과 가지고 온 답이 다른 이유를 설명해보라 하셨다. 그가 연필로 OMR카드에 표기한 답을 고쳤던 것이다. 아무 말도 못했고 그의 양 볼이 새빨개졌다. 교수님은 “학점을 줄 수가 없네. 상벌위원회로 이 건을 넘길 테니 가서 소명하게”라고 했다. 그 학생은 퇴학결정을 받고 학교에서 사라졌다.

우리나라의 대학도 자유롭고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학문의 순수성(Academic Integrity)은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학생들도 지식습득도 중요하나 반드시 진정한 의미의 정의와 공정이 무엇인가를 배워야 한다. 아니라면 대학은 존재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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