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전 취미가 없는 사람입니다. 누구는 등산을 한다, 누구는 시를 쓴다 하는데 전 모든 일에 심상합니다. 새로운 변화도 주고 싶고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요?

 

A. 좋은 질문이신데 제가 좋은 답변을 할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직업과 취미가 같은 사람입니다. 대한민국 양대 취미인 독서와 음악감상 중에 하나를 즐기고 있습니다. 독서입니다. 아! 의례적인 대답이 아닙니다. 버는 돈의 상당 부분은 책을 사는 것에 쓰고 있고, 30개의 서적 분류 중 4~5개 정도의 분야 (인문, 역사 등)는 매일 들어가서 새로 나온 책과 베스트셀러를 확인합니다. 저처럼 주류에 편승에 보시는 건 어떨까요? 독서!! 너무 따분할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질문하신 분을 꼬셔볼 생각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책은 한국의 대표적인 독서가가 쓴 책입니다. 작가이기도 하며 번역가이기도 합니다. 그가 쓴 책은 40여권에 달하며 소장한 책은 2만권이 넘습니다. 2만권이라니. 기업형 취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웬만한 도서관을 집에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까지 하라고 말씀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스스로를 ‘탐서주의자’라고 부르는 이 저자의 책 사랑을 힐끔거리는 일은 취미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내면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기업형 책벌레의 이름은 표/정/훈 입니다.

그가 이번에 낸 신간은 6년 만에 나온 책입니다. 제목은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입니다. 표지에는 에드워드 호퍼의 1938년 작 ‘293호 열차 C칸’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책 속에도 한 번 더 나옵니다. 표정훈은 이 그림을 보고 여성의 사연을 상상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한 해전, 경제는 바닥을 치고 우유 농장을 하는 한 여성이 납품처로부터 거래를 그만한다는 통보를 받습니다. 서둘러 여성은 거래처를 찾아가나 결국 우유 납품은 끊어지게 됩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여성은 고개를 숙이고 책을 보고 있습니다.

표정훈은 장거리 기차 여행에서 책의 역할을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독서는 철도 여행이 시작된 초기부터 필수 요소이자, 원하지 않는 대화를 피하는 수단이었다. 출판사들은 이런 수요에 빠르게 부응했다. 고전과 현대 작품을 가리지 않고 싼값의 책을 내놓았던 것, 문고판 탄생의 배경으로 철도가 거론되는 이유다.”

책이 말하고 싶지 않을 때 사용되는 수단이라니. 흥미로운 해석입니다. 아는 척 하는 사람들을 피할 때 핸드폰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가벼운 문고판은 혼자만의 시간을 만드는 주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책을 읽을 때는 주변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고독해집니다. 이 그림을 그린 에드워드 호퍼는 기차에 탄 현대인의 외로움을 책을 통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호퍼는 한 잡지 기고문에 이런 말을 썼습니다. “위대한 예술은 예술가의 내적 삶의 외부로의 표현이다.” 호퍼의 고독과 우리의 외로움은 고개를 푹 숙이고 책을 읽고 있는 여성의 풍경을 통해 바깥으로 드러납니다.

감성과 책과 그림 그리고 이야기. 이 책의 네 가지 기둥입니다. 독서에 대한 이야기는 글만 있어 밋밋할 것 같지만 이 책은 시대의 명화들을 소환하여 다섯 가지의 주제로 설명합니다. (1)광활한 고독과 사색의 세계로 빠져든 그림 속 인물에 관한 이야기, (2) 독립된 자아로서 그림 속 여성들이 부서지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가는 법, (3) 다시 살아갈 힘을 주는 세 가지 ‘삶과 사랑 그리고 예술’ (4)배움과 자유의 갈급함 속에서도 품격을 버리지 않는 인간의지, (5) 세상의 크기를 담은 한 권에 책에 대하여. 탐서주의자 표정훈은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을 통해서 세상살이의 고됨을 잊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세상을 똑바로 쳐다봐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사실 취미는 억지로 찾는 일이라기보다는 우연한 발견일 것 같습니다. 마음을 여는 일, 눈을 씻는 일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말입니다. 책과 그림에게 마음을 연 표정훈의 글은 취미를 찾는 사람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일러주는 것 같습니다. 그는 화가 앙귀솔라의 글을 인용하며 자신의 마음을 전합니다. ‘세상과 삶은 놀라움으로 가득하다. 나는 눈을 크게 뜬다. 그리고 바라본다. 그 놀라움을 포착하기 위해.’ 취미를 찾기 전에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열어 보세요. 그리고 바라보세요. 푹 빠져들 첫사랑 같은 취미는 당신의 손 근처에서 뛰놀고 있을 지 모릅니다. 혹 당신의 취미가 그 재미없기로 소문난(?) 독서가 된다면 이 책은 빛을 발할 것입니다.

“밤이다. 구석방에 홀로 있다. 그런 당신 곁에 책이 있다. 혼자이되 외롭지 않으리라.” – 표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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