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직공장, 전화교환원, 신문배달…
억척인생 살다 두 아들과 캐나다로
한식집 2호점 내고 직원 80명 성장
캐나다-양평 오가며 3호점 개점준비

 

“충북 보은군 속리산 기슭(하판리)에서 딸만 일곱인 가정에서 막내로 태어났어요. 아들을 바라던 어머니는 젖도 물리지 않으셨죠. 그런데 아버지는 다르셨어요. 늦잠을 자도 막 흔들어 깨우지 않으셨어요. ‘얘야, 일어나야지. 노루, 토끼가 다 얼었으니 이불 속에 넣어두렴.’ 밤새 얼어 죽은 토끼를 따뜻한 곳에 두면 살아날 줄 알고 얼른 일어났죠.” 아버지의 자상한 보살핌 속에 자란 산골소녀는 훗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외식사업가가 됐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한식집 ‘가나다라’ 사장 김홍숙(55)씨의 유년시절 이야기다.

‘부모 속 썩이지 않는 딸이 되겠다’고 다짐한 김씨는 간호대 입학을 목표로 청주 양백여상에 입학했다. 새벽 6시에 출근해 방직공장과 공장 내 학교를 오가는 3교대 주경야독의 고단한 삶을 극복하고 졸업 후 1000만원을 모았지만 언니들 집 장만 등에 정작 그가 손에 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김씨는 이후 여러 중견기업의 전화교환원으로 일하고 신문배달 등을 하며 억척스럽게 돈을 모았고, 그사이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고 서울 대방동에 1억4000만원(1억원 융자)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평범한 삶을 살던 김씨가 이민을 결심한 건 한국사회의 팍팍한 삶과 그 당시 특유의 직장문화에 지쳐서다. “결혼한 여직원들에게 퇴직 압박을 주고 아이를 가지면 더 이상 다닐 수가 없어요. 그나마 회사와 싸워서 6개월을 더 다니긴 했지만… 서민들의 삶이 갈수록 팍팍해질 걸 생각하면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건 아니지 싶었어요.” 김씨는 남편과 상의 끝에 달랑 5000만원을 들고 캐나다 기업이민을 결심했다. 두 아들이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6학년을 마칠 무렵이었다.

 

“서점서 무심코 집은 책, 인생전환점…
밑천은 ‘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죠”

캐나다 퀘벡 주 몬트리올에 있는 한식집 ‘가나다라’(Ganadara)에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퀘벡 주 몬트리올에 정착한 김씨가 바로 식당을 운영한 건 아니다. 한인신문의 식당 구인란을 보고 시간당 5캐나다달러(CAD)를 받으며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도 그는 발품을 팔아 가게 자리를 알아보러 다니는 등 꿈을 놓지 않았다. 몬트리올 외곽의 허름한 건물에서 시작한 그의 한식당 ‘가나다라’는 어느덧 2호점까지 내며 직원 80명을 둔 ‘몬트리올 맛집’으로 성장했다. 김씨가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따뜻한 마음을 선물 받았듯이, 단란한 가정에서 성장한 김씨의 두 아들 또한 어머니의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김씨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온 건 2010년 남편의 갑작스런 사망과 2년 후 90세 노모의 별세다. 마음을 다잡다가도 방황을 거듭하던 김씨는 서점에서 무심코 집어든 한 권의 책을 읽고는 가슴이 떨리는 경험을 했다. “‘네가 하고자 하거나 마음만 굳으면 다 이루어지게 하신다’는 구절이 있어요. 몇 번을 읽어도 보석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죠.”

김씨는 새로운 메시지를 찾아 양평을 오가게 됐고, 지금은 이곳에 ‘가나다라’ 3호점 개점을 구상하고 있다. 가나다라 양평점의 모습과, 그가 양평에 던져줄 보석 같은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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