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시>안정옥

한강 하구로부터 100㎞

 

이끌려왔을까 집에서 몇 발자국 나서면

한강 하구로부터 100㎞란 팻말이 서 있다

강가의 팻말은 사람으로 있어줬다 그는 없다

내 앞으로 흘러가는 강물은 언제 떠나

다른 이가 기댈 수 있게 흘러오고 있는 중인가

한밤을 무너져서 왔을 키만한 팻말을 두드린다

문을 두드리듯 나는 아직도 밖인데

울림을 못 들었다 했다

그즈음 누군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울림을 갖고 흘러오기 시작한 고통을 물려받게 되었나

옛 선비들은 마음 아플 때 멀리 떠나가는 방법을

때로 군주와 떨어져 무엇에 기대려 했는가

맞은편 강둑에선 보리들이 타들어가며 익어가고 있다

그저 바라보기 위해 심었을 뿐

가난한 시절의 허기에 기대려는 것일 텐데

익어간다는 건 누군가의 입속에서 기댄다는 말도 되었다

한강 하구로부터 100㎞

내게 도착할 수 있는 거리면서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표시인지도 모르겠다

넘어서면 안 된다는 경계는 아닐는지 그 생각으로 돌아선다

몇 발자국 떼자마자 내 마음은 시시각각 변할 것이다

시시각각은 내게 고통이고 시(詩)다

시시각각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죽어갔을 것이다

그것 없이 어떻게 시를 쓸 수 있었을 것인가

발걸음이 가볍다

 

* ‘한강 하구로부터 100㎞’는 들꽃 수목원 뒷길 산책로에 있는 팻말로 서울로부터 오는 물 길이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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