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희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문민정부 수립 이후 수많은 시민단체가 설립돼 사회발전에 큰 기여를 해오고 있다. 호사다마일까? 외국과 달리 시민단체 리더들이 정치지도자로 변신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탈이 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되기도 하고, 정부의 핵심 보직에 진출하는 이도 있다.

그동안 시민단체는 권력이나 기업관련 문제, 환경보호나 사회문제 등에 참신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면서 지지를 받아왔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일부 단체가 설립 당시의 순수성을 잃고 정치지망생들의 모임 성격으로 변질되고 있다. 언론에 자주 등장한 모 연대의 경우 권력연대라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다. 이 같은 일부 시민단체의 추락은 우리사회의 큰 손실이라 매우 안타깝다.

최근 시민단체 출신 고위 공직자와 식사를 하면서 일부 단체의 문제점을 지적했더니, 그의 반응은 20년 전과 똑같았다. 필자는 외국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몇몇 시민단체 활동을 했다. 단체 이름에 있는 ‘정의’라는 단어에 이끌려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실망하고 발길을 멀리한 지 10여 년이 지났다.

오래 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시민단체 주최로 열린 환경보호 세미나의 간사를 맡았다. 저녁에 열린 만찬 비용을 우리나라 굴지의 유명 제지회사가 후원했다. 이에 놀란 필자가 회장에게 말했다. “회장님, 환경보호 세미나가 산림을 망가뜨리고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제지회사의 후원을 받는 것이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우리가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대표적인 기업 아닌가요? 제가 외국에서 시민단체 활동에 참여했는데요, 그들은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단 1센트의 돈도 받지 않아요. 오로지 시민들의 기부금만으로 운영을 해요. 돈을 받으면 그 정부의 부패나 권력남용, 기업문제를 비판하기 어렵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최 교수, 여기는 한국이야. 우리 조직 관리와 활동에 필요한 재원조달을 어떻게 하나? 기부문화도 그렇고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낮아 운영하기가 어려워요”라고 그는 답했다. 20여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변함없는 시민단체의 변명 아닌 변명이다.

그들은 늘 시민들의 의식 부족을 탓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외국에 살던 9년 동안 각종 시민단체로부터 이메일이나 우편물을 수없이 받았다. 거기에는 자신들의 활동에 대한 상세한 홍보물과 기부요청서가 동봉돼 있다. 그러나 귀국한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우리나라 시민단체에서 홍보나 후원금을 기부해달라는 우편을 받아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는 인맥을 활용해 정부나 기업에 로비를 하고 기부를 받는데 치중한다. 시민들의 의식 탓을 했지, 스스로 자구노력은 부족한 것이다.

필자가 어느 지자체에서 보조금을 나눠주는 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이런 단체를 너무 많이 보았다. 관변단체도 일부 있으나, 수많은 시민단체의 난립에 혀를 찼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양평에서 활동하는 여러 시민단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린피스(Green Peace)와 세계야생동물기금(WWF:World Wildlife Fund)는 역사도 오래됐고 영향력도 세계적이다. 이들의 활동재원은 개인의 기부금이다. 정부와 기업의 자금은 단 한 푼도 받지 않는다. 그래서 환경오염 관련 기업들은 이들의 조사나 비판대상이 되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조심한다. 이들의 감시 하에 있다는 사실로 자연스레 환경보호가 될 수 있는 이유이며, 나아가 활동가들은 시민들의 존경까지 받는다. 하지만 이들 단체 출신이 정부 공무원이나 정치인으로 변신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시민단체는 시민 중심으로 권력과 사회문제에 대한 제3의 감시자로 비판세력으로서 남아있어야 한다. 부디 우리나라의 시민단체들이 초심으로 돌아가 순수성과 도덕성을 회복하기 기대한다.

저작권자 © 양평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