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이벤트 당선작

임경애 주부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을 읽고

‘소확행.’ 이 책을 마주하며 내내 입가에 맴도는 단어였다. 왜 그랬을까. 그림책을 보며 나는 왜 지난 한 해 우리나라의 트렌드로 선정되기도 했던 ‘소확행’에 생각이 머물렀던 걸까.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에세이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을 때,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 느끼는 행복과 같이 바쁜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을 소확행이라 부르면서 이 단어가 생겨났다. 즉 소확행이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 또는 그러한 행복을 말한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지극히 개인적인, 어찌 보면 너무나 시시해서 남에게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그런 작은 일에서 우리들은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넌 언제 제일 행복하니. 이런 막연한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그 질문이 이렇게 들렸다. ‘넌 언제 제일 편안하니.’

나는 이제 다섯 살이 된 나의 미묘(美猫) 니니와 함께 토요일 오후 아무도 없는 집에서 세수도 하지 않은 채 하루 종일 둘이서 소파에서 뒹굴 대며 먹고 싶을 때 먹고 서로를 일정한 간격을 둔 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른한 오후를 보낼 때가 제일 편안하고 행복했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누구에게나 이런 시간과 공간이 있지 않을까 싶다.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은 사라져가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담고, 그림으로 기억하는 이미경 작가의 아련하면서도 다정함이 묻어나는 그림책이다. 한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는 구멍가게는 낡고 불편하고 있어야 할 것보다는 없는 것이 더 많았던 공간이었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100원짜리 동전 하나로도 한껏 부자가 된 듯한 기분으로 구멍가게 안을 반짝이는 눈빛으로 스캔하며 무엇을 살까 즐거운 고민을 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모두가 비슷하게 가난하고 부족하고 불편했던, 그래서 나의 결핍이 그다지 큰 흉이 되지 않았던 시대에 태어나고 자란 나는 낡고 볼품없는 구멍가게를 20여 년 동안 전국을 돌며 손이 많이 가는 펜화로 공들여 그려준 작가가 있어 더 없이 고마운 마음이다. 그녀의 발걸음에 동행하며 그 시선을 따라 사물을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그림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긴 글로 설명해야 할 것을 언어가 아닌 그림으로 보여줄 때 나는 더 많은 이야기를 내 안에서 꺼내볼 수 있어서 스스로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기도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언어 외에 다른 것으로도 많은 것을 알 수가 있다.

소소하지만 행복함을 느끼는 대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로부터 멀리 있는 것들이 아니라 늘 내 주변에 함께 있어 낯익고 함께 한 그 시간만큼 마모되어 동글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림을 그릴 때 눈높이를 달리 하면 정물이나 풍경이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살면서 나의 시선을 바꾸면 삶의 풍경이 달라짐을 경험하고픈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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