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당 이식의 동계팔경(東溪八景)-

여러 봉우리 중 300m정도 높이의 산이 2개 있으니 해발 343m 소금산과 386.7m 간현봉(‘간현암’)이다. 소금산은 삼산천의 동쪽에, 간현봉은 서쪽에 있고 우뚝하기로는 간현봉이 더하다. 그러나 3가지 항목 중에 두 가지나 일치하는 쪽은 소금산이다.

올라보면 의문이 풀릴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직에 가까운 소금산 등산로의 404개의 철계단을 통해 산을 올랐다. 턱에 차는 숨은 고사하고 30도에 가까운 폭염 속에 땀범벅이 된 등산이었다. 택당은 삼산천에서 올려다보며 그저 높은 석봉이라는 의미로 그렇게 썼을 뿐 실제로 이산에 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절벽에 가까운 바위산에 철계단을 놓아 정상과 연결시킨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소금산에 등산로를 조성한 것은 삼산천 협곡이 수태극(水太極)을 이루며 간현의 섬강으로 흘러드는 경치 등 정상까지 오르는 동안에 전망되는 주변이 정말 아름답기 때문에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등산로를 오르면서 보니 비둘기를 닮은 바위가 이 산의 귀퉁이 쪽에 붙어 예쁘게 내려다 보였다. 정상에 올라 종합해 보니 천척높이로 우뚝서있는 석봉은 소금산임이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생각했던 대로 구암은 비둘기머리를 닮은 바위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확신도 갖게 되었다. ‘구암은 일천척이나 되는 석봉아래 시내〔東溪〕에 붙어있어 이 산의 일부를 이룬다. 구암은 한 면이 움푹 패였으며 깊은 못과 붙어있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필자의 짧은 소견으로 동계기의 구암에 대한 설명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헤맨 꼴이 되고만 것이다.

소금산의 구암 뒷쪽으로는 위의 7경에서 말한 중앙선폐철로가 이어져 짧은 터널 하나를 뚫어 놓았고 구암의 움푹 패인 부분 3~4m앞까지 모래자갈이 쌓여 패인 곳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게 되었으며 구암의 서쪽에 서 있으면서 푸르름을 자랑하던 청송(靑松)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만이 달라진 점이다.

물굽이로 인해 생긴 못 속에 꽂힌 듯이 보이는 구암의 이남으로 섬강에 이르기까지의 삼산천은 양쪽이 암벽을 이룬 협곡(峽谷)을 형성해 크고 작은 소(沼)들이 푸르름을 더하고 부근의 기암과 높은 산으로 말미암아 아름답기 그지없을 뿐 아니라 시원해 특히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간현유원지의 삼산천계곡이 이어진다.

택당은 동계기를 맺으면서 “아곡(鴉谷)에서 벗들과 함께 술병을 들고/아침에 찾아왔다가 저녁에 돌아 갈만한 거리에 있는데,/ 물고기와 새를 잡고 꽃과 과일을 따는 일을/ 마치 원지(園池)에서처럼 하며 즐길 수가 있다./ 동계의 경치를 서술하는 일은 이 정도로 끝낼까한다. / 여기에서부터 안정강(安井江)까지는/ 그래도 아직 4,5리쯤 남아있는데,/ 나의 골짜기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있어서/ 다 살펴볼 수가 없었다”라고 썼다.

동계 중 실제로 경치가 좋은 곳은 마지막 8경인 구암에서부터 택당이 안정강(安井江)이라고 한 섬강까지의 삼산천계곡과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 섬강일가 포함된 간현유원지 일대다. 동계기는 “나의 골짜기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다 살펴볼 수가 없었다”는 말로 글을 마치나 택당의 이말은 사실이 아니다. 중앙선폐철로는 터널을 2개와 교량 1개가 수태극을 이룬 삼산천 협곡을 가로질러 섬강유원지 섬강철교로 이어져 옛 간현역에 이른다. 이 폐철로는 철거되지 않고 간현역에서부터 동계8경의 8경(구암)부터 6경(조봉석벽)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레일바이크로 인기리에 활용하고 있다.

섬강철교북단에는 오형제봉이라는 그리 높지 않은 바위봉우리가 다섯이 있다. 오형제봉 중 섬강철교 옆 작은 봉우리 하나를 여기바우 또는 여기암이라고 한다. 강물과 절벽이 어우러진 절경으로 옛날 시인 묵객들과 기생들이 놀았던 곳이다. 이 바위 아래쪽 물 속 절벽에 "汶淵洞天"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하나는 토정(土亭) 선생과 간옹(艮翁)의 유작이라고도 하고 또는 택당의 유작이라고도 하는데 확실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후자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논어에 공자의 제자 민자건이 벼슬을 사양하며 “다음에 또다시 찾아온다면 그때 나는 문수(汶水)가에 있을 것이다”라고 한 말이 있는데 이 때 문(汶)은 은둔할 곳을 뜻하기도 한다. 동천(洞天)은 세상의 번잡함을 잊고 조용히 지내는 마을 이라는 의미라는 ‘원주시 지명 유래’의 설명이다.

이글의 마무리를 위해 현지를 여러 차례 누비면서 어렴풋이나마 택당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다. 비록 간현유원지부근의 경치엔 못 미치지만 당신이 살고 있는 마을부근의 가까운 곳에도 찾아보면 나름대로 아름다운 곳이 있으니 즐기며 간직하자는 진정한 애향심의 발로였던 것이다. 나아가 자손에 대한 어버이로서의 사랑과 숭조(崇祖)사상도 가르치기 위함이었음도 알 수 있다. 이는 동계기의 앞부분 중 일부를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나의 후손들은)선조를 그리워하고 산수를 즐기도록 하고, / 아버지께서도 생전에 이곳의 경치를 좋아하셨으므로/혼이나마 자손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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