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당 이식의 동계팔경(東溪八景)

송석정을 복원하자는 필자의 주장이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동계팔경의 제4경 송석정을 잊지 않기 위해 접근할 수 있는 도로를 개설하고 잡목을 제거하는 등 노출된 부분을 정리하고 소나무 몇 그루와 영산홍 등 화목류를 심고 가꾸어 관리되고 있다는 점이 다행스럽다. 해마다 땀흘려 잡초를 제거하고 청소하는 등 이곳을 가꾸어 제법 어울리게 만든 양동면주민자치위원들이 고맙기만 하다.

동계8경의 제5경은 양계합금처(兩溪合襟處)로서 여기서 양계란 지금의 석곡천과 단석천이니 두 개울이 합쳐 만나는 곳으로 두 개울의 합수점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 합수점을 ‘옷깃 금(襟)’자를 써 두 개울의 옷깃이 합하는 곳이라고 멋들어지게 명명하고는 다음과 같이 썼다.

“계류를 따라서 남쪽으로 방향을 돌리면/두 계곡물이 합류(合流)하는 곳에 이른다. / 이곳에는 송림(松林)과 반석(盤石)이 있으니,/일찍이 두세 명의 사우(士友)와 함께 연구(聯句)를 지었던 곳이다. / 여기서 남쪽이하로는/뭇 계곡물이 한데 합쳐서 하나의 시내를 이루게 되니, /양쪽 산골의 물들이 여기에 모두 귀속된다.”

50여 년 전 까지만 해도 두 개울의 합류점에는 넓은 반석과 뒤의 평평하게 내려오며 경사를 이룬 산이 어울려 이곳의 경치는 수려했다. 양동~원주간 도로확포장으로 인해 산허리가 잘리고 도로로 잘린 곳에서부터 반석까지는 흙을 메워 밭으로 개간되더니 지금은 아예 높은 곳의 흙을 밀어다 반석을 덮어 평지밭이 되고 말았다. 구릉의 맨 끝부분인 물가에 사람하나가 겨우 발을 올려 놓을만한 반석의 작은 부분만이 노출되어 있을 뿐이다.

개발(開發)로 반석과 소나무 숲으로 인해 무척이나 아름다워 두 세 명의 글동무들이 한 사람이 한 구씩 불러 한 수를 이룬 시〔聯句(연구)〕를 지으며 풍류를 즐기던 이곳은 완전히 흙속에 묻혀 버려 딴 모습이 되고 말았다. 2008년에 쌍학교 서단으로부터 이곳까지 1.2㎞를 제방 둑을 따라 산책로와 데크ㆍ 가로등ㆍ꽃길 등이 조성되어 많은 주민들이 산책로로 이용하고 있어 아쉬움을 더한다.

“가파른 산봉우리와 깎아지른 석벽(石壁)들이 수려하고 기이한 자태를 경쟁하는 가운데, 물이 그 밑바닥을 뚫고 지나가면서 어떤 때는 고요히 잠겨 있기도 하고 어떤 때는 격동하며 흘러가기도 하는데, 급한 여울과 조용한 못들이 서로 뒤섞이면서 굽이마다 기이한 형상을 빚어내고 있다.“

이상은 동계8경의 제5경인 양계합금처(兩溪合襟處)로부터 제6경인 조봉(鵰峯)석벽까지의 형상을 기록한 것으로 지금도 이글의 표현에서 빼고 더할 것도 없이 깨끗하고 아름답다. 다만 낮아 범람하기 쉬운 곳엔 인공의 둑이 생기고, 도로로 쓰이는 곳도 있으며 주변의 평평한 땅은 모두 전답으로 이용되고 있음은 당시와 달라진 모습일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는 꼭 집고 가야 할 부분이 있다. 하나는 동계(東溪)가 속한 행정구역이고, 다음은 시내〔河川(하천)〕의 지금 이름이다. 지금의 삼산역 앞에 이천교(梨川橋)라는 다리가 하나 놓여 있다. 이천교의 서단은 경기도(양평군 양동면 삼산2리)이고, 동단은 강원도(원주시 지정면 판대리)이다. 한편 양동면의 북쪽으로 부터 흘러내리는 석곡천은 제5경인 양계합금처 약 300m지점에서 동북쪽에서 내려오는 계정천과 합류하고 여기에서 서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단석천과 합류하는데 이후 남쪽은 이 시내가 섬강에 합류하기 까지 삼산천이라고 부른다. 정리하자면 동계8경중 1경에서 5경까지는 경기도 양동면과 석곡천에 속하고 6경부터 8경까지는 강원도 지정면과 삼산천에 속하는 것이다.

동계8경 중 제6경은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에 위치하고 있는 조봉(鵰峯)석벽이다. 택당은 조봉석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그 서쪽으로 가장 높은 곳이 바로 조봉(鵰峯)이다. / 조봉 아래로는 천 길의 석벽이 서 있고,/그 밑바닥은 낚시터나 누대의 위치로도 적격인데,/문뜩 모래밭에 앉아서 위를 쳐다보노라면/매우 장쾌한 기분이 우러난다.”

조봉석벽을 확인하는데도 꽤나 많은 수고가 필요했다. 왜냐하면 천 길의 석벽이 있다는 내용 외에 더 자세한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기서 ‘천길’이라함은 매우 높다는 의미일진대 삼산천변에는 높은 석벽이 여러 군데에 있는 것이다. 옥편에서 ‘鵰’자를 찾아보니 ‘수리 조(鵰)’였다. 그렇다면 직감적으로 ‘수리봉’이나 ‘수리산’을 찾으면 될 것 같았다. 수소문해보니 역시 수리봉은 존재했고 주변에서 제일 높은 이산에는 높은 석벽도 속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사람들은 이 석벽을 ‘쏘다지기’라고 부른다. 쏘다지기는 바위가 깎아지른 듯이 높고 넓어 웅장할 뿐 아니라 물 쪽으로의 경사도가 90˚를 넘어 금방 넘어져 쏟아질 것 같다고 하여 이렇게 부른다. “문뜩 모래밭에 앉아서 위를 쳐다보노라면 매우 장쾌〔원문은 ”甚壯(심장)“〕한 기분이 우러난다.” 는 내용대로 석벽 아래에 앉아 위를 올려다보니 높이가 아득하고 무시무시한 바위벽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나를 덮칠 것 같은 아찔함에 전율까지 느껴졌다. 이 느낌을 심장(甚壯)하다고 표현한 택당의 문장력에 또 한 번 감탄을 금하지 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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