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누비기 Ⅱ-영춘 이복재 경기도 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1910년에 편찬한 『조선산업지(朝鮮産業誌)』, 1924년 발간한 『조선의 시장』, 1925년 발간한 『시가지와 상권』의 장시에 대한 기록을 비교하여보면 15년간 양평의 장시 변화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양근장은 1910년 기록에 홍문동시장으로 명칭이 바뀌어 적혀있고 개시일은 변함없이 3.8일이다. 몇 번에 걸쳐 폐시와 복설을 거듭하던 지평의 읍내장이 월하장(月下場)으로 명칭을 바꿔 4.9일을 개시일로 하여 복설된 점이 눈에 띠며, 용두장은 1910년과 1925년 기록에 개시일이 2.7일로 적혀있으며, 곡수장은 세 기록에 모두 적혀있으나 개시일은 1910년의 2.7일에서 1924년과 1925년에는 4.9일로 변경되어 적혀있다. 지평 월하마을 이름을 따 새로 생긴 월하장에 개시일을 내어주고 개시일에 변동이 생긴 곳은 곡수장 뿐이다.

『양평군지』와 『양평3.1운동사』 등은 일제의 조선헌병대사령부 및 조선총독부경무총감부에서 작성한 자료를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양평관내의 각 읍면단위 3.1운동 만세시위 중 청운면과 단월면 합동시위가 3월 23일, 양평읍이 3월 24일, 양동면이 4월 7일, 지평면과 개군면 합동시위가 4월 11일 이었다. 그 중 청운면과 단월면은 용두장, 양평읍이 양평장터, 양동면이 양동장터, 지평면과 개군면이 곡수장터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던 것은 일제의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그날이 장날이었다는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 1914년 일제에 의해 시장규칙이 시행되면서 조선총독부의 시장 감독과 파악이 일원화되어 장시는 제도화하였지만 장시의 개시일 의 변경까지를 강제하였는지는 밝혀진바 없어 양평 3.1운동의 읍면별시위 중 날짜가 장날이었다는 부분은 앞으로 보다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앞의 책 이후 1929년 발간된 『조선의 시장경제』에는 3.8일이 개시일인 양근장과 4.9일이 개시일인 곡수장 등 2곳만이 적혀있어 큰 변화와 함께 1930년대를 맞았음을 알 수 있다. 곡수장만이 1770년 이전에 개시한 이래 가장 긴 기간 동안 양평의 큰 장시 중 하나로 건재하고 있었던 점이 주목된다.

일제강점기인 1941년 문창정(文定昌) 편저인 『朝鮮の市場』은 부록에 「在來市場一覽表」를 실었는데 이는 1938년 말의 상황으로 앞서의 1922년 조사자료와 함께 장시의 현황과 변화를 살필 수 있는 유일한 자료다. 이 자료에는 양근3.8, 양수2.7, 용두2.7, 곡수 4.9 등 4개장시만 적혀있다. 군청 소재지인 양근장과 장이 서기 시작한 이후 지속적으로 성시를 누리던 곡수장 등 2개 장시 외에 1900년대 초에 청운면에 용두장이, 1938년경에 양서면에 양수장이 새로 생기는 등 지역의 부침과 함께 장시의 변경도 컸다.

해방 이후의 양평장시에 관한 기록은 1961년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해방에 이어 6ㆍ25전쟁을 거치면서 한반도 전체가 사회적 혼란과 경제 침체로 빠져들자 양평의 장시 또한 침체기를 맞았으며, 정전 이후 양평장 등 인구가 많은 지역부터 새롭게 개시되었을 것이지만 어느 장시가 언제 다시 생겼는지 알 수 없다.

6·25전쟁 이후 1960년대에는 1961년 9개, 1962년 11개가 양평군통계연보에 적혀있으나 장시명칭이나 개시일은 적혀있지 않다. 그러나 1963년도 통계연보에는 양평,양수,국수,단월,용두,양동,지평,곡수,용문,개군,옥천,서종 등 10개면에 12개의 장시가 있다고 적혀있다. 양서면과 지평면에 2개씩의 장시가, 강상면과 강하면을 제외한 8개면에는 각각 1개씩의 장시가 적혀있어 사상 최고 많은 장시가 있던 때였다. 지평면에 오랜 전통을 가진 곡수장과 소재지인 지평리에 지평장이 섰고 양서면의 국수장은 강 건너 강하면사람들이 많이 이용했기 때문에 생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강상면사람들은 강 건너 양평장을 주로 이용했다.

그 후 1970년대부터 양평의 장시는 점차 감소추세를 보였다. 이는 철도와 도로 등 육상교통의 발달과 경제발전에 따른 자동차 등 개인소유 운송수단의 급격한 증가에 따른 현상이었다. 1970년대 초에 9개에서 말에 7개로, 1980년대 말에는 6개로, 1992년에는 4개로 줄어든 것으로 통계연보에 적혀있다. 그러나 1992년 통계연보에 적혀있지 않은 양수장과 용두장은 지금까지 폐시된 적이 없었다는 주민들의 주장으로 볼 때 조사의 정확성에 의문이 있어 1990년대 양평장시의 보다 자세한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하겠다.

지금 양평에는 양평읍의 양평장이 시장 이름 공모전을 통해 2014년 1월에 양평물맑은시장(3·8)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용문면의 용문장이 용문천년시장(5·10)으로, 양서면의 양수장이 양수리전통시장(1·6)으로 이름을 바꿔 3곳이 군내 대표적 5일장이 되었다. 또한 시설현대화와 경영현대화, 장터확장 이전과 주말장터운영 등 여러 가지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고 있다. 상설과 5일장의 복합형태인 물맑은양평시장은 문화와 정(精)이 흐르는 문화접목형 전통시장으로, 용문천년시장은 용문산 산나물과 한우를 연계한 산채 한우 특화전통시장으로, 양수리전통시장은 두물머리와 세미원 등 천혜의 관광자원을 연계한 관광형 전통시장으로 특성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특히 물맑은양평시장은 이미 수도권에서 성남의 모란장등과 함께 알아주는 유명 전통시장으로 발돋움하였다. 그러나 지평장(1.6)·양동장(3.8)·용두장(2.7) 등은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이용객이 급격히 줄어들어 폐시위기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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