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 주부

요즘 ‘햄버거병’에 관한 이야기들이 엄마들 사이에서 연일 오르내린다. 땅콩 알레르기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나에게는 더 공감 가는 이야기다. 막내가 생후 18개월 무렵 어린이집에서 두유를 먹은 후 집에 돌아와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숨을 쉬지 않아 응급실로 데려갔다. 그때 처음 알았다. 아이가 땅콩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으며, ‘아나팔락시스’라는 호흡곤란이 오는 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고소한 맛이 나도록 두유에 조금 섞여 있는 것이 아이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각하기 싫을 만큼의 공포를 가져온다. 6살 무렵, 54가지의 바늘을 등에 찔러 나온 혈액으로 알레르기 반응 검사를 시행했는데 땅콩과 메밀은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기에 검사조차 시행할 수 없었다.

올봄 배우 구혜선씨가 아나팔락시스로 호흡곤란을 일으켜 이목을 끌면서 조금은 이 질병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학교에서는 여전히 인식이 부족해 매년 새학기가 되면 전전긍긍, 불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무서운 질병이지만 ‘소수’이기에 아는 이들은 극히 적고, 설명을 해도 그저 가려움을 호소하는 아토피 정도로만 여긴다.

막내가 국공립유치원에 입학했을 때,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종이 한가득 빼곡히 적어서 진단서와 함께 담임선생님께 건넸다. 선생님은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잘 알아서 할게요”를 되풀이하셨다. 어린이집에서도 겪었듯이 선생님은 나를 그저 ‘유난떠는 엄마’로 생각한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선생님께 “00이는 땅콩이 직접적으로 들어있는 것뿐만 아니라 땅콩과 같은 제조시설을 사용한 것도 먹으면 안 됩니다.” 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와서 며칠이고 가려워서 밤새 긁어 피가 나는 정도는 말씀드리지도 않았다. 다만, 목숨이 위험해지는 순간이 올수도 있다는 것, 그 순간 구급차만 빨리 불러 주시고, 그때 “아이가 ‘아나팔락시스’를 가지고 있어요”라고만 말해주시면 정말 고맙겠고 더 바라는 것이 없다고 말씀드렸다. 가슴은 미어졌지만, 직장 다니는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연신 “걱정하지마세요~”만 반복하셨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아이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눈이 충혈 되고 붓는 일이 발생했다. 선생님께 리스트를 받아 체크해 보니 아이가 ‘엔요’를 먹었다고 했다. ‘엔요 요구르트’를 살펴보니 ‘땅콩과 같은 제조시설을 사용함’이라고 적혀있었다. 아이의 상태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고 ‘힘드시겠지만 이러다가 갑자기 쇼크가 올수도 있으니 제발 부탁드린다’며 머리를 조아렸지만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다른 유치원으로 옮겨주면 안되겠냐는 말을 들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서는 학기마다 이런 일이 반복되곤 했다. 그래도 3~4월이 지나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선생님도 아이 상황이 어느 정도 파악되고 반 친구들도 “선생님~ 이거 00이는 먹으면 안 돼요”하고 챙겨주고는 했다. 그런데 초등학교는 또 다른 어려운 점이 있다. 아이를 담당하는 선생님이 여러 분이라는 것, 그 선생님들끼리 소통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 또 선생님들 간 알레르기에 대한 인식이 현저히 다르다는 것. 영양교사, 담임교사, 보건교사, 돌봄교사 그리고 방과후교사까지 일일이 만나서 설명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돌봄의 경우는 더욱 주의를 요하는 곳이기도 했다. 급식은 매월 안내되는 식단에 알레르기 군을 기입해두고 있지만, 돌봄교실 간식은 식단조차 파악하기 어렵고, 공장에서 만들어진 패스트푸드가 많기 때문이다.

‘햄버거병’에 관한 뉴스를 접하며 학교에서도 패스트푸드점의 햄버거를 먹을 일이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학교 교직원 전체가 ‘아나팔락시스’ 등의 특이성 질환에 대한 교육을 받아 위험한 순간 적시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하고, ‘건강한 음식, 바른 먹거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학교급식과 돌봄교실 간식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 아이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평범한 아이들에게는 당연히 좋은 음식이니 전체적으로 학교급식의 질이 높아질 것이므로 ‘소수’이긴 하지만 ‘다수’에게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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