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식업 성공스토리> 능수엄마

69회 춘천옥은 신(神)을 만드는 곳

 

나 대구에서 왔는데 맛만 보고 갑시다. 나 광주에서 왔는데 한 접시만 싸주쇼. 나 부산서 왔는데 그냥 가란 말요? 나 대전서 왔는데 늦어도 좋으니 꼭 먹고 갈래요.

 

프랑스와 영국을 다녀와 양평집에서 쉬고 있는데 춘천옥에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허마두 사장의 목소리다.
“날래 오라우. 큰일났어야.”
“무슨 일인데 그래?”
“암소리 말고 달려오라메.”
전화가 끊긴다. 사고가 난 건 아닌지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어캐 해얄지 모르갔어. 기러니께니 날래 오라우. 알간?”
“도대체 무슨 일인데?”
“손님들이 춘천옥을 정복했어야.”
“그게 뭔 소리야? 정복하다니?”
“그 배라먹을 테레비 때문이디.”
또 전화가 끊긴다.
그제야 짐작이 갔다. 원래 손님이 많은 데다 특집방송을 내보냈으니 어떤 현상이 벌어졌겠는가.
나는 급히 디지털단지 오거리로 차를 몰았다. 1시간여를 달려 춘천옥에 도착하니 현관 앞 도로가 인파로 꽉 차 있었다. 출입문은 닫혀 있고, 입구에는 아이스박스가 겹겹이 쌓여 있는데, 직원 두 명이 밀려드는 손님들에게 음료수 캔을 하나씩 나눠주며 연방 소리쳤다.
“장사가 끝났으니 돌아가십시오.”
출입문 유리에는 오후 6시에 문을 닫겠다는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이럴 수가. 6시부터 밤장사가 시작되는데 문을 닫다니.
나 대구에서 왔는데 맛만 보고 갑시다.
나 광주에서 왔는데 한 접시만 싸주쇼.
나 부산서 왔는데 그냥 가란 말요?
나 대전서 왔는데 늦어도 좋으니 꼭 먹고 갈래요.
뒷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선 나는 텅 빈 홀에 서 있는 허마두에게 소리쳤다.
“안내문을 어서 떼지 못해! 너 춘천옥 망하는 꼴 보려고 저런 걸 써 붙였어? 방송을 듣고 몰려온 손님은 일시적인 뜨내기라구. 절대 문을 닫지 말고 어떻게든 감당해봐.”
“누군 닫고 싶어 닫네? 오늘은 고기도 떨어디구, 양념도 떨어디구, 암 것도 없는데, 어캐 문을 여네?”
“낼부턴 재료를 더 준비해서 문을 닫지 말라구.”
“오늘은 재료를 적게 장만해서 이러네? 아무리 장만해도 손님이 밀려드는 걸 어캐 감당하갔어. 요즘 어드러케 지냈는디 늬는 상상도 못할 거라메. 휴가철인데도 대기손님 번호표만 삼백 번이 넘었더랬어. 기래개디구 손님들끼리 싸우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드랬는데, 표 한 개당 세 명만 잡아도 삼삼은 구니께니 구백 명이 넘잖갔어. 인산인해라기보담 전쟁터 배급소 같았어야. 길코 손님 땜에 도로가 막혀개디구 경찰관이 출동했더랬어. 기래서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구나 싶어서리 문을 닫고 음료수를 나눠드린 거라메. 알간?”
“그래서 나를 부른 거야? 너 언제까지 내 지시 받으며 장사할 거야.”
“만날 기러든? 이런 경우래 첨이잖아. 재료를 잔뜩 준비해도 두세 시간이믄 독나니께니 어드러케 처리하란 말이네?”
“그것도 혼자 처리 못해? 나한테 전화를 걸어야 마음이 놓이든? 네가 이런 사내니까 미스 강을 처녀로 늙게 하지.”
“까불지 말라우. 이래봬두 내래 춘천옥 매상을 키운 사람이니께니.”
“얼마나 키웠는데? 나 없이도 최소한 세배는 더 올려야잖아. 사장 시켜준 지가 일년이 다 돼.”
“머이? 세배? 아주 날 잡아먹으라메.”
“왜 자꾸 우리 허마두 사장님께 욕을 퍼대세요? 이젠 우리 사장님께 그러지 마세요.”
미스 강이 허마두 역성을 들었다.
“어쭈, 너 언제부터 이놈 편였어?”
“기용 선생, 강 지배인한테 너가 멉네까? 길코 사장한테 이놈이 멉네까? 나도 댁을 회장님으로 깎듯이 모실테니께니 나한테두 사장님이라고 불러주시구래.”
“회장이란 명칭 쓰지 말랬잖아.”
“기럼 머라 부르면 좋갔시오?”
“선생.”
“기거이 소원이믄 할 수 없디. 선생나리, 우리 둘은 사장이니 회장이니 유식 떨지 말고 사석에선 끝까디 늬로 통하자우. 아무래두 늬로 부르는 거이 건강에 좋갔어. 기럼 기럼.”
“이놈 저놈 하고 그전처럼 욕으로 통하면 어때?”
“좋티. 빈틈없는 늬한테 기래도 인간다운 헛점은 욕뿐이잖네. 기러티만 말이디, 인자 욕은 삼가야잖갔어? 욕은 재민 있디만서두 긴장을 깨기 쉬운 게야. 운영체계도 달라졌으니께니 형식도 중한 거라메. 맞디?”
“그래. 네 말이 맞다.”
밖에 어둠이 깔리자 손님들이 좀 뜸했다. 춘천옥 건물에 불이 꺼져 있으니 손님들이 그냥 되돌아가는 모양이었다. 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도 돌려보낸 지 오래다.
나는 3층 휴게실에 금천 본점 허마두 사장, 신촌점 예비지점장 강 지배인, 잠실점 예비지점장 김춘수 주방장을 모아놓고 강남점 예비지점장 정 마담을 기다렸다. 나는 한 달 만에 춘천옥 휴게실에 앉아본 셈이다. 운영회는 수시로 모임을 가졌겠지만 나는 되도록 연락을 끊고 지냈다. 아예 내가 죽고 없는 것처럼 독립심을 키워줄 참이었다.

 

내가 춘천옥에 미쳤던 것은 죽음보다 더 무서운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아무 의미 없는 인생에서 뭐에 미쳐야만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다.
춘천옥 운영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구두에 묻은 흙만 떨구고 가도 좋으니 손님이 북적대기만을 바랐던 것이다. 이익이 나든 말든, 재산이 모아지든 말든 그건 알 바 아니다. 손님 끄는 재미에만 미칠 뿐이었다. 손님이 미어터지면 흥이 나고 손님이 떨어지면 사는 맛을 잃었다.
“능수엄마래 어디 오고 있는 게야? 날래 오잖구.”
허마두가 핸드폰으로 재촉했다.
“능수엄마가 뭐에요. 정 마담님보고.”
강 지배인이 허마두의 말을 바로잡아주었다.
“하도 오랜 세월 부르다보니께니 내 입이 깜빡했구레.”
“오늘 오랜만에 정 마담을 만나보게 됐군.”
내 말에 허마두가 솔직히 털어놓았다.
“오늘 본점 영업이 불가능할 줄 알구서리 지점장들과 기용 선생을 불렀습네다. 진작에 기용 선생 모실 자리를 만들고 싶었더랬시오.”
그러고 보니 남녀 모두 정장 차림이었다. 언제 작업복을 정장으로 갈아입었는지 모른다.
“여기 예비지점장들이 입은 정장은 내가 직권으로 장만했시오.”
나는 벌떡 일어나 허마두를 포옹했다.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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