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식업 성공 스토리> 능수엄마

66회 춘수 애인을 직원들 앞에 세우다

 

너희 둘은 싸우고 싶을 때가 많을 텐데 그동안 무척 참아온 셈이지. 하지만 이제는 정말 달라져야 해. 너희들은 머잖아 경영자가 될 사람들이야. 앞으로 지점을 하나씩 맡아서 운영해야 되는데 시시한 감정 따위 조절 못하고 싸워? 그처럼 유치한 사고방식으로 사장 노릇 하겠어?

 

나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박수를 기다렸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그만큼 ‘식당 종업원’이란 이미지가 싫었던 모양이다.
“박수 치는 사람이 없군. 내가 입이 닳도록 평범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일렀는데 헛수고였군. 그래서 여러분에게 은행원 하나를 소개할 참이오. 이 아가씨는 우리 춘천옥 직원이 되려고 오늘 은행에 사표를 냈소.”
내 말이 멈춘 사이 아내가 윤지연을 데리고 나타났다. 직원들은 그녀의 화려한 차림새와 교양미 넘치는 표정에 넋을 잃었다. “식당일을 하려고 은행을 그만두다니?” 그런 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윤지연이 김춘수의 애인임을 숨겼다. 아내 옆에 앉은 그녀는 연방 친절미 넘치는 미소를 흘렸다.

 

윤지연은 춘수보다 두 살 위다. 춘수가 봉급을 저축하러 다니면서 알고 지낸 사이로 춘수의 성실하고 진취적인 모습에 차츰 마음이 동했던 것이다. 다만 여자 측 부모에게 인사를 미룬 채 지내오다가 며칠 전 내가 그녀의 부모에게서 확답을 듣고 오늘 소개하기에 이르렀다.
호텔에서 여자 측 부모와 상견례를 가질 때였다. 부모가 없는 춘수 측에서는 나와 아내가 대신 참석했다. 춘수에게 양아버지가 있긴 해도 내세우기 어색한 입장이어서 결혼 후에나 인사시키기로 했다. 학력이나 직업 등 약점이 많은 춘수여서 우리가 들러리를 설 수밖에 없었다. 그날 나는 윤지연 부모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 자리에 나오신 걸 보니 따님에 대한 신임이 얼마나 두터우신지 가늠하겠습니다. 저도 김춘수 군을 어느 누구보다 신임하고 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김춘수 군을 남이라고 여겨본 적이 없고, 사실 김 군에게 꿈을 갖고 있습니다. 저의 업소에는 일년에 백여 명의 젊은이가 들어오고 나갑니다. 줏대 없는 짓이지요. 누구든 오래만 있어준다면 그를 성공의 표본으로 삼고 싶었어요. 그 유일한 젊은이가 김춘수 군입니다. 저는 항상 직원들에게 평범하게 살지 말라고 이릅니다. 김 군의 환경을 보지 않고 내면의 세계를 성찰한 따님이 정말 대단해 보입니다. 지성을 갖춘 젊은 여성이 이런 안목을 지녔다는 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윤지연 양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중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우리 춘수를 경영학 박사로 키워주세요. 학비는 전액 우리가 책임질 테니 앞으로 춘수의 아내 겸 가정교사가 돼줘요.”
“아닙니다. 춘수 씨는 이미 경영에 능통한 거나 진배없습니다. 이분은 이미 가야 할 길을 가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흐르는 강물에 빵을 던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만 오히려 제가 춘수 씨를 좇아 더 배워야 합니다.”
윤지연의 말이었다. 그녀는 자기 부모에게 미소를 지어보였고, 부모 역시 딸에게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직원들에게 윤지연에 대한 소개가 끝나자 개업기념 선물 증정식이 이어졌다. 나는 지배인 허마두와 아내를 시켜 기념품을 증정하도록 했다. 허마두가 증정할 기념품은 5년 이상 된 직원에게 줄 3돈 짜리 금반지와 3년 이상 된 직원에게 줄 2돈 짜리 금반지였고, 아내가 증정할 기념품은 1년 이상 된 직원에게 줄 1돈 짜리 금반지와 나머지 직원들에게 줄 은수저였다.
증정식이 끝나자 식사와 술판이 벌어지고 노래자랑이 이어졌다. 나는 직원들 끼리 실컷 놀도록 슬며시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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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옥 신촌점 신축설계를 의논하고 돌아와 보니 능수엄마와 미스 강이 보이지 않는다. 아내도 보이지 않는다. 홀팀이나 주방팀 모두 한결같이 시무룩한 표정이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도 선뜻 대답하는 직원이 없다. 내가 목소리를 높여 재우치자 그제야 겨우 하나가 입을 연다.
“휴게실에 가보세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이 간다. 휴게실로 다가가니 안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내의 목소리다. 조심스레 문을 열자 아내 앞에 능수엄마와 미스 강이 나란히 앉아 있다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슬며시 일어난다. 나는 농담부터 던진다.
“또 싸운 모양이군. 두 사람 얼른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떼와.”
그러자 아내의 웃음이 터지고 뒤미처 능수엄마의 웃음이 터진다. 그녀의 눈에는 아직도 눈물이 묻어 있다. 미스 강은 웃지도 않거니와 두 손바닥으로 단단히 얼굴을 가려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전화통을 돌려놓고 파출소에 전화 거는 시늉을 한다.
“미스 강은 웃지 않는 걸 보니 파출소에 신고할 모양인데, 그럼 내가 경찰을 불러줘야지.”
그래도 웃지 않자 나는 수화기로 미스 강의 어깨를 툭툭 치며 파출소와 통화 중이니 어서 신고하라고 농을 건다. 그래도 웃지 않자 나는 계속 귀찮게 군다.
“전화 안 받을 거야? 직접 파출소에 갈려구? 그럼 내가 데리고 가야지.”
나는 미스 강의 팔을 잡아당긴다.
“어서 파출소에 가자구.”
그제야 풋 하고 웃음이 터지며 눈물 젖은 얼굴이 드러난다.
“맹추들. 싸우려면 피터지게 싸울 게지 겨우 눈물만 찍찍거려? 이유야 뻔하겠군. 미스 강이 능수엄마에게 뭘 시켰는데 능수엄마가 눈을 흘겼을 테고, 그 꼴을 보고 미스 강은 언짢은 말을 던지니까, 능수엄마가 그동안 참아왔던 화를 터뜨렸겠지. 그러자 이번에는 미스 강이…”
“거기까진 맞는데 다음이 문제죠. 둘 다 내 말을 안 들어서…”
아내가 입을 가리고 웃는다.
“뭐야? 요것들이 나 있을 땐 안 싸우고 우리 마누라만 있으니까 싸워? 우리 마누라를 얼마나 무시했으면 울면서까지 싸워?”
“누가 울면서 싸웠능교. 사모님이 혼내시니까네 울었지예.”
“미스 강, 너도 혼내니까 울었어? 싸울 때 아파서 운 게 아니구?”
“…”
“왜 대답 않지? 다시 묻겠는데 능수엄마가 머리채를 잡아끄니까 아파서 울었나, 아니면 사모님한테 꾸중 듣고 울었나.”
“…”
“또 다시 묻겠는데, 너 능수엄마한테 가슴을 얻어맞고 울었어?”
“아뇨.”
미스 강은 그 말을 던지고 얼른 얼굴을 가린 채 도망친다. 내가 재빠르게 팔을 잡아 도로 자리에 앉히자 “미치겠네.” 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내가 그 말을 물고 늘어진다.
“범도가 미치겠네 하더니 너도 미치겠네야? 너 범도한테서 짝사랑 받으니까 그 보답으로 미치겠네, 하는 거지?”
그제야 미스 강이 웃음을 터뜨린다.
“미스 강 웃기기 참 힘드는군. 그 봐, 내가 어떻게든 널 웃겼잖아. 이게 사업이야. 속이 타도 참으면서 끝내 너를 웃기고 마는 근성, 이게 사업정신이라구. 알겠어?”
“네.”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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