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규 서종면주민자치위원장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이고, 헌법을 수호할 의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2016헌나1 대통령탄핵심판 사건 결정문의 결론 부분이다. 헌법 제66조 제2항은 대통령의 책무에 대하여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기에 헌법재판소는 모든 증거를 종합하여 위 사건 피청구인이 대통령직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상 초유의 경험이다. 대통령의 ‘파면’이라는 것은 일반 공무원 한 명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단지 어떤 한 사람의 능력이나 책임의 한계 문제를 뛰어 넘는다. 한 사람의 대통령을 뽑기 위해 얼마나 많은 국민들의 수고와 노력이 기울여졌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열망과 기대를 고스란히 담았던 직책인가. 국민들이 그런 열망을 가지고 뽑은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한 사람으로 파면되는 획기적인 사건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탄핵심판은 결정되었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대통령의 파면이 우리에게 남겨주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깨달을 것인가. 탄핵심판이 결정되자마자 언론은 뉴스의 초점을 포스트 탄핵 정국으로 옮겨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일반 국민들은 막연히 “이제 장사도 취업도 잘되고 세상이 좀 좋아지겠지”하고 기대하고 있는듯하다. 물론 한편에서는 불복의 분노 속에서 말이다.

그를 탄핵한 자는 누구인가. 헌법재판관인가? 아니다. 헌법이다. 이번 탄핵심판에서 우리가 단 한 번이라도 곱씹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여기에 있다. 헌법은 현대 국가의 민주주의 교본이다. 민주주의는 국민 모두의 자유를 보장하는 통치시스템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자유다. 자유는 ‘자신의 자유의지 발현’과 ‘타인의 자유의사의 존중’ 두 가지를 그 내용으로 한다. 헌법이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한 것은 국민이 자유의지로 국가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통치권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당위를 말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선 중요한 것은 국민이 스스로 자신의 자유의지로 사회의 주인이 되고, 자기 운명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인식과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파면이 자신의 불평과 불만족을 터뜨리는 대리만족이 되거나 대통령의 경질이 나의 운명을 바꾸어 주리라는 막연한 기대만을 가진 국민이라면 우리 헌법과 민주주의가 말하는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될 수는 없다는 얘기다. 헌법은 공무원이나 정치인의 경전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교본이다. 탄핵 결정을 겪으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역사적 교훈의 첫 지점은 바로 여기다.

자유의 두 번째 내용은 타인의 자유의사의 존중에 있다. 탄핵 결정은 어느 한 편의 승리나 다른 쪽의 패배를 뜻하여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란 국민 모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고, 모든 국민이 국가를 구성하는 주인이기에 ‘통합’이라는 개념은 정치적 테크닉이거나 회색지대(灰色地帶)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본래의 속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 사건 탄핵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입니다.” 헌법재판관 8인 중 안창호 재판관의 보충의견이다. 또 이정미 재판관은 퇴임사에서 말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민주주의의 요체는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데 있다.”

하늘에 떠 있는 저 거대한 태양이 바다와 땅에 내려앉으면 따뜻하고 아름다운 햇살이 된다. 햇살은 온기와 향기를 머금는다. 탄핵심판은 끝났다. 그로 인해 국민들을 편 나누었던 대통령은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그에 대한 죄와 벌, 그리고 명예회복은 이제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지켜보면 된다.

온기와 향기로 가득 찬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서는 나의 자유의지와 책임을 다른 이에게 저당 잡혀서는 안 된다. 나의 자유의지를 물질적 욕심으로 팔아서도 안 되고, 무주공산의 정치판에 욕심을 차리기에 급급해서도 안 되고, 승리감에 도취하여 자기만족에 빠지거나 패배감에 분노해서도 안 된다. 오로지 향기를 뿜는 일이 무엇일지 다시 한 번 생각하자. 봄이다.

 

저작권자 © 양평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