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보험 적용받지만 노동자 법적 권리 못 누려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한다. 프로그램 기획과 운용, 강사 관리, 행사와 회의 보조 등 전문적인 업무를 담당한다. 정기적으로 급여 개념의 활동비를 지급받는다. 연봉은 1800만원 정도다. 4대보험이 적용된다.’

이쯤하면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노동자를 떠올리는 게 상식이지만 현실은 아니다. 주민자치센터 담당 공무원들조차도 노동자로 보는 게 옳다고 하는데 급여가 아닌 봉사활동비를 지급받는다. 이런 모순은 지난 2003년 10월 ‘양평군 주민자치센터 설치 및 운영 조례’가 제정된 이래 13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다.

주민자치센터 사무장의 법적 지위는 ‘양평군 주민자치센터 설치 및 운영 조례’에 의해 규정된다. 조례 제7조(운영)제2항은 ‘읍․면장은 위원회의 의견을 들어 소속 공무원, 위원회 또는 자원봉사자로 하여금 자치센터 운영에 관한 사무를 전담 또는 분담하여 수행하게 할 수 있다’, 제3항은 ‘위원회는 2항에 의해 지정된 자 중 소속 공무원을 제외한 위원회의 위원 또는 자원봉사자에게는 업무량과 근무시간을 감안하여 제10조 제6항의 규정에 의해 수강료 징수액 중 일정금액을 봉사활동비로 지급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동 조례 제13조(수당)는 ‘자원봉사자에게는 예산의 범위 내에서 필요한 실비를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들 조항에 따라 사무장은 ‘월급’이 아닌 ‘봉사활동비’와 ‘실비’ 명목으로 매달 사실상의 급여를 받고 있다. 문제는 자원봉사자라는 조항으로 인해 노동자가 마땅히 누려야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점이다. 근로기간이 보장돼있지 않아 고용이 불안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사무장은 주민자치위원회가 새로 구성되는 2년마다 해촉 위협에 노출된다.

한 주민자치위원장은 “전임위원장과 신임위원장 생각이 다른 경우 전임위원장과 일했던 사무장을 꺼리는 분위기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지난해 군이 사무장 관련 부분을 시정하려 했지만 위원장들 반대가 많았다”고 시인했다.

한 사무장은 “급여를 받고 있지만 지역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재미를 느끼며 일하고 있다”면서도 “고용위협을 받을 때는 그동안 해왔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느낌으로 뭘 잘 못 했나 불명예스러운 마음까지 든다”고 토로했다.

고용이 불안하다보니 전문성을 인정받기는커녕 부당한 지시나 처사를 감수한다는 이야기도 자주 나온다. 몇 년 전 사무장으로 일했던 한 주민은 “프로그램 업무 담당자로서 의견을 말하는 데도 눈치가 보이고, 위원장의 사적인 부탁은 물론 잦은 회식 참석 요구를 거절하기도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이런 문제가 양평군에만 해당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경기도를 비롯한 대부분 지역의 주민자치센터가 관련 조례 때문에 업무를 전담하는 사무장에게 봉사활동비 명목의 사실상의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면 노동자로서 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 예로 경기도는 지난 2015년 11월 주민자치센터 유급사무원의 고용산재보험 적용을 철저히 하라는 공문을 각 시․군에 내려 보냈다. 도내 주민자치센터에서 일하는 한 사무장이 근무 중 의식불명에 빠졌지만 산재적용을 받지 못하고 종결 처리되자 부랴부랴 내린 조치다.

양평군 관계자는 “사무장은 시․군별로 급여, 업무량, 근무시간의 차이가 크다. 동사무소 직원이 업무를 할당받아 하는 곳도 있다”며 “양평군의 경우 사무장이 주민자치센터 업무를 전담해 8시간 일하지만 애초에 주민자치로 운영하는 시설이라 세부적으로 규정을 안 해 놓았고, 읍․면사무소가 총괄해 군이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무원이 일부 업무를 담당하거나 지역의 사정을 잘 아는 역량 있는 주민을 읍․면이 직접 노동자로 고용해 업무를 전담시키면 된다. 하남시는 주민자치위원회 고유의 업무를 제외한 프로그램 운영, 강사 섭외 등 대부분의 행정적인 업무를 동사무소 주민자치담당 공무원이 전담한다. 양평군의 한 군공무원은 “현재 주민자치센터 사무장의 업무량은 공무원 한 사람이 담당하기에도 벅찬 양”이라고 평가했다.

이천시는 평생교육사가 이 업무를 담당한다. 지난 2005년 8월 평생학습도시로 주도적인 활동을 계획하며 14개 읍면동 주민자치센터에 평생교육사를 전면 배치했다. 주민자치와 관련된 활동은 주민자치위원이나 간사 1~2명의 자원봉사로 이뤄지고, 프로그램 운영은 평생교육사가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윤석주 이천시 평생교육과 주무관은 “평생교육사를 파견해 운영한 결과 2009년에는 2004년 대비 프로그램 참여자수가 6.9배, 프로그램수는 5.1배 성장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외연만이 아니라 각 읍면동 주민자치센터와 이천시가 격년제로 평생학습축제를 열 정도로 내적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양평군 주민자치센터가 운영된 지 13년이 넘었다. 이제는 군이든 읍․면이든 자치센터업무를 전담하는 사무장 고용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놓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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