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 성종규 서종면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

아름다운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34

 

파리에 이민을 간 사람이 초기생활을 시작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를 인터넷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에서는 필요한 상점을 찾으려고 할 경우 아무런 정보나 준비 없이도 크기 경쟁을 하는 간판만 보고도 손쉽게 상점을 선택하고 찾을 수 있었는데, 파리 시내에서는 건물 밖으로 내달린 돌출 간판이나 입간판이 전혀 없어 미리 정보나 주소를 가지고 가지 않으면 언제나 그 상점 가까이 가서야만 그 상점의 실체를 알 수가 있었다는 얘기였다.

파리의 간판 규제의 엄격함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파리는 세계 최고의 예술도시, 창조도시인 만큼 도시 전체를 디자인 개념 아래 계획하고 있다. 시민들의 문화적 수준 자체도 높지만, 그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적 규제가 상당히 엄격하다.

파리 시내의 간판들. 간판보다는 건물외부의 개성으로 사람을 끈다.

파리시는 다양한 양식의 역사적 건물들이 이루는 도시경관을 간판이 해쳐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정책이 확립되어 있다. 간판은 도시의 경관에 철저히 조화되고 거기에 기여해야 한다. 간판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시청의 허가를 받아야하는데, 위치와 크기, 재질, 색, 조명방식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제출해야 하며 심사 기간만 해도 3~4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규제를 어기면 벌금도 엄청나다.

역사적 건물이 밀집한 일정 지역에는 크기는 건물 크기의 절반 이하, 2층 이상에는 설치 불가, 돌출 불가, 글씨 색깔은 흰색과 금색만, 조명은 일정한 명도 이하의 외부 조명만 가능 등등 철저히 원칙을 정하여 심사하고, 위반 설치하는 경우에는 우리나라 돈으로 하루에 10만원 이상의 벌금을 내야 한다. 심의위원회에는 단지 건축과나 도시계획과의 공무원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법률·행정 등 4개 분야의 공무원이 포함되고 지역대표, 환경단체 대표도 포함된다. 상인들은 모두 이런 정책에 동의한다. 서로가 경쟁하면 서로가 피곤할 일인데, 서로가 원칙을 지키면 차라리 편하다는 것이다.

파리 중심가의 차도는 차선도 없는 울퉁불퉁한 석재 포장의 도로다. 특별히 규제하지 않아도 차량은 자연스럽게 시속 30㎞ 이하의 속도로 떨어지고, 거리와 간판은 모두 보행하는 ‘사람 중심’의 여유롭고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파리 시내가 세계인의 문화관광도시가 되는 기본적인 이유다.

파리의 맥도날드 간판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된다. 잘 알다시피 세계의 지점 어디나 빨간 바탕에 선명한 노란 ‘M'자와 흰 글씨로 이루어진 맥도날드가 파리 시내에 입점하기 위해 파리시청의 원칙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빨간색 등 선명한 색상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검정색 바탕에 흰 글씨와 덜 선명한 금색 ’M'자로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맥도날드는 그 이후 세계 여러 곳에서 원칙을 양보해 갔다.

파리의 맥도날드

사정이 이렇게 되자 각 상점들은 자신의 가게를 눈에 띄게 하기 위하여 간판 대신 건축물의 외관에 개성을 주는 방식을 고안했다. 건물 외부의 출입구를 개성적으로 장식한다든지 포치(지붕이 돌출되어 지어진 출입구)나 필로티(지상층을 사람의 왕래와 자동차의 통행을 위해 개방한 건축양식) 등을 이용하여 개성을 발휘했다. 간판 규제 정책은 건축물의 외관을 개성적으로 창조하는 일거양득의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철저히 간판을 최소한의 상업적 목적에 제한하고 도시경관에 기여하게 하는 것. 그것은 사람들을 아름다운 간판의 거리로 유인하여 앞으로의 문화시대에는 오히려 최대의 상업적 효과를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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