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식업 성공스토리> 능수엄마

53회 미스 강, 나를 불행하게 만들어다오

 

“아니지. 경영자는 보통사람이 아냐. 경영자는 자신의 감정을 기계처럼 조작하는 사람이야. 결과론을 먼저 예측하는 기계라고.”
“그런 경영자라면 저는 경영자를 포기할래요. 감정을 돌덩이로 만들고 싶진 않아요.”
“그런 뜻이 아냐. 감정을 누르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시키라는 말이지. 남의 감정처럼 말야.

 

“요즘 사장님 맘이 어떠실지 잘 알아요. 그렇다고 너무 염려 마세요. 제가 능수엄마만은 못하지만 열심히 할게요.”
“미스 강, 솔직히 말할까? 능수엄마는 그게 한계야. 더 발전할 수 없어. 세상에는 한계가 있는 사람이 있고, 그 한계를 뛰어넘을 사람이 있어. 미스 강은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는 인간이야. 몰라보게 달라질 수 있다는 거지. 내 말 알겠어?”
“예.”
“그럼 능수엄마와 미스 강의 차이점을 한마디로 말하지. 능수엄마한테는 방금 내가 미스 강한테 한 말을 할 수 없어. 그 말을 이해 못하니까. 하지만 미스 강에게는 방금 했잖아. 왜지? 왜 그런 말을 했지? 미스 강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한 거야. 그게 두 사람의 차이점이라구.”
“고마워요. 저를 그렇게 봐주셔서.”
“고맙다는 말 듣고 싶어 한 말이 아냐. 사실대로 말 한 것뿐야. 다만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 어떻게 해얄지 그건 미스 강의 몫이지.”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니 최고가 되겠다는 사람은 누구든 춘천옥에 남을 가치가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은 어서 봉급 많이 주는 곳을 찾아가야지.”
“제가 양심에 찔리는 게 있어요.”
“뭔데?”
“제가 주방장과 진정으로 어울릴 수 있다면 이번에 못가도록 했을 거에요. 그렇지만 멀리할 사람이어서 떠나길 바랐지요. 붙잡지 못한 것, 양심에 찔려요.”
“범도는 자기 수준에 맞는 길을 택했을 뿐야. 그가 대승옥에서 배신당할 것도 알고 있어. 그렇다고 앞일을 말해준다고 믿지도 않을 것이며, 오히려 내가 이상하게 보일 뿐이라구. 춘천옥 봉급 수준이 한국 요식업에서는 최고액수라고 자부해. 미스 강도 알다시피 나는 직원들에게 어떤 식으로 고마움을 표시할까 그걸 고심해온 사람이야. 그런 보수의 두 배를 계속 줄 업주가 있을지 그게 의문이라구. 또 계속 준다 해도 주방장이 그런 터무니없는 보수를 받을 만한 사람인지…”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제가 아까 양심에 찔린다고 말한 게 바로 그 뜻이었어요. 범도씨에게 세상물정을 일깨워주고 싶었지만… 저와 상관없는 사람이어서.”
“그래?”
놀라운 일이다. 미스 강의 수준이 이 정도란 말인가. 그녀의 높은 의식수준에 오히려 내가 조심스러워진다.
“미스 강.”
“네?”
“왜 이런 일을 하는 거지?”
“식당 일이 어때서요?”
“상식이란 게 있잖아.”
“저도 사장님 같은 사업가가 되고 싶어서 그래요.”
“결혼도 해얄 텐데?”
“저는 시집 안 가요. 멋진 사업가가 될 거에요.”
“도전정신이 기특하군. 미스 강?”
“네?”
“나 춘천옥 망해도 할 수 없어. 다만 최선을 다할 뿐야.”
“염려 마세요. 이 참에 저도 제 능력을 실험해보고 싶어요.”
나는 얼른 밖으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다. 감당 못할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실컷 울고 싶다.
나는 실컷 우는 게 소원이다. 서럽게 울 기회가 없었다. 절머슴 아버지와 눈먼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아침 끼니가 없을 때도 서럽게 울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무시해왔던 한 직원 때문에 실컷 울게 된 것이다. 나는 마음껏 눈물을 쏟아냈다. 몸이 가벼워진다. 그때 바로 곁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느새 미스 강이 내 곁에 머물고 있다. 겨우 눈물을 멈춘 내 입에서 엉뚱한 말이 흘러나온다.
“미스 강, 너도 내 곁을 떠나다오! 그래서 나를 불행하게 만들어다오!” 미스 강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그녀의 눈자위에는 어느새 물기가 젖어 있다. 하고 싶은 말을 억지로 참는 모양이었다. 나는 뜨거워지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때 미스 강의 잔자누룩한 목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럴 때 사장님을 껴안아드리고 싶지만…”
“그래, 참아야지. 나처럼 참아야지. 그런 감정을 참는 것도 경영자 수업이거든.”
“경영자도 사람인데요?”
“아니지. 경영자는 보통사람이 아냐. 경영자는 자신의 감정을 기계처럼 조작하는 사람이야. 결과론을 먼저 예측하는 기계라고.”
“그런 경영자라면 저는 경영자를 포기할래요. 감정을 돌덩이로 만들고 싶진 않아요.”
“그런 뜻이 아냐. 감정을 누르라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시키라는 말이지. 남의 감정처럼 말야. 자신의 감정에 빠지지 말고 자신의 감정이 뜨겁게 팽창하는 순간 진리와도 같은 결과론에 매달려보라는 거지. 다시 말해 차원 높은 감정으로 대체시킨다는 말이지.”
“이해하기 힘든데요.”
“그래, 그래,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으로 바꿔버리라는 말이지.”
“그 말씀이 더 어려운데요.”
미스 강이 피씩 웃었다.
“그래, 그래, 지금 웃었잖아? 그렇게 웃도록 감정을 조작하라는 말야. 어때? 나를 껴안아주고 싶은 심정이 싹 가셔버렸지?”
“아닌데요. 여전히 사장님을 껴안고 싶은데요.”
“거짓말. 그 거짓말은 내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예의치례고.”
“대단하시네요. 이젠 남의 애정까지 조절하시네요.”
미스 강이 소리내어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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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셔?”
춘천옥 저녁 장사가 시작될 무렵 누가 경리에게 내 거처를 묻는 소리가 들렸다. 주방에서 장사준비 상태를 점검 중이던 나는 카운터 쪽을 살폈다. 카운터 주변에서 예비군복을 입은 장정 칠팔 명이 웅성거리고 있는데 나를 찾는 사람은 예비군 중대장을 맡고 있는 설계사무소 소장이었다. 건축과를 나와 ROTC 장교로 제대한 그는 무척 나를 따랐다. 아마 동원훈련을 끝내고 대원들과 술 생각이 나서 찾아온 모양이었다.

김용만 소설가(잔아문학박물관 관장)

“사장님, 우리 사단장님을 잘 아세요?”
주방에서 나오는 나를 보자 그가 호들갑을 떨었다.
“잘 알지. 우리집 단골이시거든. 그런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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