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우 양평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이러저러한 놀라운 소식들에 이제 놀라기도 지쳐갑니다. 하나하나의 소식이 충격적이지 않은 것이 없어 자극에 둔감해지는 탈감각(desensitization, 특이항원에 대해 면역학적 반응이 없는 상태 또는 반응하지 않게 되는 과정)이 일어나는 상황입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유전적 요소와 성장 배경이 인격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는 정신과의사 입장에서도 정말 이렇게까지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는지 참담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자기 인식과 반성, 인격의 성숙이 이루어졌으니 저 똑똑하고 교활하기까지 한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저 자리에 오르게 될 기회를 잡지 않았을까 하는 예상을 산산이 부수는 현실입니다.

사실 모든 분들도 마음속으로는 예측하고 있었을 겁니다. 한때 유명한 재벌가 출신 정치인이 버스비를 황당하게 얘기했을 때 비웃고 비난하는 기사들이 난무했습니다. 저는 그런 사실에 분개할 수는 있겠지만 별 의미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창 시절 이후에는 자기 돈으로 가게나 식당에서 직접 돈을 지불해 본 적도 별로 없을 그 사람이 어떻게 버스비를 알겠습니까? 자동차 마니아가 아니라면 운전을 직접 해본 일도 까마득하실 그분이요. 너무 당연한 겁니다. 예외라는 게 이렇게까지 없을까 하는 생각 정도만 들었습니다. 그 분은 자신이 재벌들 중에는 정치를 할 만하다고 여겨서 나왔을 겁니다. 자신의 돈으로 정치력을 다 확보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자신이 일반 시민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또 스스로 노력도 많이 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무의식 중 나오는 말실수, 실제 경험해보지 않은 국민들에 대한 이해 부족, 일반인으로 살아보지 못한 자식의 말실수까지 막지는 못했고 지금은 정치뉴스에서 볼 수 없는 분이 되셨습니다.

공주로 태어나서 자란 사람이 일반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고요? 백성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왕이 있다고요? 성군(聖君)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종대왕이 백성을 사랑해서 한글을 만들었다고요? 전 세종대왕님을 존경합니다. 정말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분이 지적 능력이 뛰어나고 다재다능해서이지 말 그대로 백성을 사랑하셨을 수는 있지만 이해하실 수는 없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한 날 한시도 그들처럼 살아본 일이 없을 테니까요.

이순신도 위대하신 장군이십니다. 백성을 사랑하셨을 테고 엄격한 군율을 지키신 분입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양반가문의 대표적 무관이었을 뿐이고, 난중일기를 직접 보시면 아시겠지만 요즘 기준으로 보면 폭력 상관, 성노예 이용자이며, 심각한 알코올중독 장애와 우울증이 의심되기도 합니다. 굳이 현대적으로 판단해보자면 그렇다는 것일 뿐이고 다른 양반들에 비해서는 매우 위대한 분일 것이라고 분명히 생각합니다. 이런 왕정, 신분제 시대에 운 좋게 백성들을 자기 나름대로 사랑하는 왕을 만나면 좋죠. 아주 행복한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일본, 영국 등의 입헌군주국에서는 왕에게 책임과 권리는 박탈하고 국민들을 무한히 사랑하는 역할만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제왕적 지도자가 일사불란하게 군대식으로 국가를 지휘하는 것이 이상적인 상태라고 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여러 의견이 대립하는 민주주의를 국론분열, 철없는 사상대립이라고 바라보는 관점을 독재자들의 오랜 지배 하에서 무의식적으로 습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라는 것은 끊임없이 토론하고, 협상하고, 의견 대립을 하고, 해결점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국민들을 잘 ‘지도’해 나가는 지도자가 아니라 다른 의견을 듣고 협상할 수 있는 지도자가 선출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 허망한 시기가 국민의 힘으로 빨리 지나고 잃어버린 민주사회가 다시 오기를 희망하며 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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